강대국은 왜 원자락 잠수함 개발에 열광했는가(하) > E-저널 2015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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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저널 2015년 ISSN 2465-809X(Online)

제2호(08월) | 강대국은 왜 원자락 잠수함 개발에 열광했는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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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문근식, 한국국방안포럼 대외협력국장 작성일15-09-11 13:40 조회2,9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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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의 원잠개발 비화


  ◎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 대통령 관심 아래 8년 만에 개발


  1954년 1월 21일 미국의 첫 번째 원자력 잠수함은 트루먼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 ‘USS Nautilus(SSN-571)’로 탄생했다. 노틸러스는 수중 4,000톤급, 1만 5,000마력의 잠수함으로서 가압경수형 원자로를 사용했다.

  1946년 3월 원자로 개발에 착수해 1953년 6월 육상 시제함 원자로 시운전에 성공함으로써 원자로 개발에 약 7년이 소요되었고, 원자로 개발부터 취역까지는 약 8년이 소요되었다. 이처럼 원자로 개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미국은 당시 잠수함 설계 및 건조 능력을 완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체 건조에는 그리 시간(약 2.5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이렇게 신속하게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트루먼 대통령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 승인 후 해군과 원자력에너지위원회가 통합된 해군원자로사업단을 구성,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인력, 시설, 기술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53년 6월 원자로 정박 시운전에 약 3.5개월이 소요되었고, 1954년 1월 코네티컷 주 뉴런던에서 푸에르토리코 산 후앙까지 1,300마일을 16노트의 속도로 84시간 만에 항해했다. 이후 1958년 8월에는 하와이에서 출발 북극을 횡단해 영국까지 항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노틸러스 함은 원자로 수중항해 시험을 위한 전용시험선으로 운용된 바 있는데, 이는 원자로 시운전이 함 건조 공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의미한다.

  ◎ 소련, 조급한 개발 욕심에 승조원 94명 방사능 피폭


  소련의 K-3 잠수함을 나토 회원국들은 노벰버급 잠수함으로 부른다. 소련은 미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개발에 자극을 받아 조급하게 개발을 추진해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소련의 K-3 잠수함은 수중 4,000톤급, 1만 7,500마력의 잠수함으로서 VM-A형 가압경수형 원자로를 사용했다. 1950년 원자로 개발에 착수해 1956년 육상 시제함 원자로 시운전 때까지 약 140건의 문제가 발생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련도 1,000여 개의 공장과 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추진했지만,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욕심 때문에 급하게 서둘러 원자로 시운전 기간이 미국보다 지연되어 결국 1959년 3월 미국이 개발한 기간보다 1년이 더 소요된 9년 만에 첫 번째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하게 되었다.

  1959년 5월 첫 번째 원자력 잠수함이 취역을 했지만 11월에는 북극 항해 도전에 실패했고, 1960년~1962년에 원자로 연동기관에 나타난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이후 1962년 7월 드디어 북극 잠항항해에 성공했으나 귀환 도중 증기관 파열로 승조원 94명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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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러시아 빅터-3급 기술 적용한 진급 전략원잠 6척 확보 나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이다. 그러나 원자력 잠수함 개발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보다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중국은 1987년에야 비로소 시아급(Type 092) 전략원잠 1척을 확보하게 된다.  시아급은 중국의 분류이고, Type 092 등의 분류는 서방측에서 분류한 함형별 호칭이다.

  중국의 원잠 개발은 러시아 기술에 많이 의존했지만, 개발 단계에서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소음 과다 발생 등 기술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꾸준히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한급(Type 091/091G) 공격원잠 3척을 취역시켰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샹급(Type 093) 공격원잠 2척을 취역시켰다. 또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그들이 자랑하는 진급(Type 094) 전략원잠 6척을 확보 중인데, 여기에는 사정거리 8,000킬로미터의 JL-2 핵미사일 12기를 탑재하며, 가장 중요한 설계 기술은 러시아의 빅터-3급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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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러시아 야센급 공격원잠 모델 ‘아리한트’ 2012년 진수

  인도는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시 미국 항모 기동전단의 무력시위에 위협을 느껴 1980년대 초 원자력 잠수함 건조 계획인 ATV(선진기술함정)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독자적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자 소련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1988년~1991년 소련의 찰리-1급 순항미사일 원잠 1척을 임대했다. 인도 측에서는 이것을 차크라로 명명해서 승조원 훈련용으로, 그리고 항해 운용 시험과 구조 연구용으로 운용했다.

  인도 해군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ATV로 명명된 원잠연구개발계획을 구체화해, 각종 관련 시설을 정비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충분한 잠수함 독자 건조능력을 보유할 수 없게 되자, 독자적인 요구 성능 검토를 포기하고 러시아의 루빈 설계국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뤄갔다. 1990년대 후반에 검토된 최초의 원잠은 공격원잠으로서의 성능뿐만 아니라 순항미사일 탑재 능력도 적극 추진되었다. 배수량은 7,000톤급이고, 인도와 러시아가 공동 개발한 가압수형 원자로(계획 출력 190MW)를 탑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함교탑 후방의 선체 내에서는 대함 및 대지 순항미사일을 위한 수직발사관 장착도 고려했다. ATV의 설계가 진행되자 인도 해군은 조립 건조 도크를 정비하기로 했는데, 이 시설은 애초 1997년에 정비를 완료해 1번 함을 2004년에 준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계획이 진행되면서 갑자기 예상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주로 비용 문제였는데, 인도 해군이 예측한 비용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되자  해군의 다른 모든 전력 정비 계획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2000년에 공표된 인도 해군의 신 독트린에 따라, 당분간 동서 인도양에서 함대 행동 능력의 유지를 강조해 항모의 정비 목표도 3척에서 2척으로 줄어들었으며, 잠수함 전력의 경우도 고성능 디젤 잠수함 정비를 먼저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원잠 개발 계획은 대폭 후퇴하게 되었으며, 일부 모듈이 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계획이 상당히 연기되어 1번 함의 준공 시기도 확실치 않게 되었다. 인도의 원잠 개발은 시작부터 계속 지연되었는데, 근본적인 이유는 개발 주체 간의 불협화음, 인력, 기술, 시설 등을 체계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조직 및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아무튼 인도 해군은 독자 개발 마지막 단계인 2010년 러시아로부터 재차 아쿨라급 잠수함 1척을 10년간 임대 운용하면서 노하우를 습득, 많은 부분을 보완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80년대 초부터 추진했던 독자 개발 원잠은 비록 러시아의 야센급 공격원잠을 모델로 건조되었지만 사업 시작 32년 만인 2012년에 아리한트라는 이름으로 취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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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선박용 원자로 개발은 원자력 잠수함 개발을 위한 첫 단계

  일본은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선박용 원자로를 상선에 탑재해 시험 운용에 성공함으로써 언제 어느 때라도 국가정책만 결정되면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가로 분류된다. 일본은 미국, 소련, 서독 등의 원자력 선박 개발에 자극을 받아 1963년 일본 원자력개발사업단을 설립해 원자력 상선 ‘무쓰’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상선 ‘무쓰’ 건조를 시작해 1970년 선체부를 완성하고 1972년부터는 핵연료를 투입해 해상 시운전을 시작했다. 1990년 일본 최초로 원자력 동력 항해를 시작해 1991년 2월에는 U-235 4.2킬로그램으로 8만 2,000킬로미터 실험 항해에 성공함으로써 원자력 상선 ‘무쓰’를 완성했다. 일본은 핵무기는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주장하고 있는 국가다. 그러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의 핵심인 우라늄 농축 시설과 사용 후 연료 재처리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 일본의 선박용 원자로 개발은 원자력 잠수함 개발을 위한 첫 단계

      ◀ 국가 수뇌부의 정치·경제·외교 총력전으로 농축 및 재처리 시설 확보 성공

​  일본은 197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위해 미국을 설득했으며, 1977년 초에는 원자력 에너지 자립 정책을 위해 후쿠다 다케수상이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을 방문해 군사적 위험이 없고 에너지 빈국인 일본에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제인을 포함해 국가 수뇌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이 필요함을 끈질기게 주장했는데, 그 구체적인 협상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1단계는 협상의 출발 단계로, 1981년 5월에 레이건 대통령과 스즈키 젠수상은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확보에 대한 계속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 미국에 경제적 반대급부 제공은 협상 성공의 유인책으로 작용

  2단계는 협상의 본격화 단계다.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이 제출하는 앞으로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관련 계획에 대해 미국이 30년간에 걸쳐 일괄해서 사전 동의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단계에서 양국은 서로가 원하는 경제적 반대급부를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은 미국에 10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 관련 장비 및 부속을 구매하고 대미 자동차 수출 규제에 합의하기로 했고, 미국은 일본에 16억 달러 규모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관련 장비와 30억 달러 규모의 재화・용역 구매를 기대하고 있었다.

      ◀ 미 정부 부처 간 이견, 의회 반발을 설득한 일본의 성공적인 외교

  3단계는 미국 정부 부처 간 이 표출 및 의회의 반발 단계다. 협상을 주도한 미국의 국무부, 에너지부, 군비통제국 등은 협상안에 대해 합의했으나, 국방부와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불만을 표명했다. 당시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반대서한을 국무부에 제출했고, 원자력규제위원회도 반대서한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러한 정부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진통을 겪은 후 마침내 1987년 11월 9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신 협정서에 서명하고 의회의 비준을 위해 안건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미국의 상원, 하원은 모두 신 협정에 반대했다. 특히 상원 외교위원회는 미일 원자력 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사례별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신 협정의 포괄동의 방식은 이 법에 배치되므로 일본과 재협상할 것을 의결하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하원 외교위원회도 신 협정이 원자력법에 위배되므로 일본과 재협상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에 레이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90일간의 심의 기간 경과 후 신 협정은 자연스럽게 승인되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통해 확보한 원자력 정책의 성공은 일본의 수상을 포함한 정치・경제계 주요 인사들이 역량을 총결집해 범국가적 총력외교를 펼침으로써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확보 협상을 타결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는 미국 및 IAEA 안전조치 강화 규제 피해 러시아에 접근

  인도의 원자력 산업 발전은 프랑스 등 미국의 원자력 독점에 반대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인도는 인접하고 있는 중국과 대립관계에 있었고, 미국과는 제3세계의 지도국이라는 입장 때문에 관계가 좋지 못해 결국 러시아에 접근해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인도의 타라푸르  원전 1·2호기는 미국의 GE사가 공급한 원자로로서 이 원자로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IAEA안전조치 규정에 따라 1980년까지만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게 되어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미국 대신에 프랑스가 장비 및 핵연료를 공급하기로 합의하고 미국-인도-프랑스간 3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도 IAEA안전조치 규정에 따라 1993년도부터 인도에 핵 연료 공급을 중단하게 된다. 이렇게 IAEA안전조치 규정이 강화됨에 따라 여러 차례 핵연료 도입선이 변경된 후 인도는 1995년 중국과 협약을 체결해 한동안 핵연료를 수입했다. 그러나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하자 중국이 핵연료공급을 중단함으로서 최종적으로 접근한 국가가 러시아다.

  러시아-인도 간 원자력 협력은 2000년 10월 초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인도 방문 시 러시아-인도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쌍무적 협력을 위한 협정에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양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양해각를 체결해 러시아로부터 핵연료를 구입해 운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IAEA의 안전조치를 받지 않은 핵 비보유국에 대해서도 핵폭발 장치 개발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증하면 핵물질, 장비, 기술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자국의 수출통제 규정을 개정한 후 인도에 핵연료를 공급했다. 결국 인도는 핵물질을 핵 폭발 장치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양국 간의 보증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핵연료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인도 정부의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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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원자력 잠수함을 가질 수 있나

 

​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는 국가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


  원자력 잠수함을 갖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기술 수준이고, 둘째는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이며, 셋째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국가적 의지다. 우리는 원자력 기술 강국 세계 5위의 수준으로 기술적인 문제는 쉽게 극복하리라 여겨지며, 핵연료는 오로지 함정의 추진체계에만 활용하기 위한 농축도 20% 미만(프랑스 루비급 잠수함 핵연료 농축도)을 사용한다면 국제시장에서 상용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핵무기 제조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오해도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 계획이 전혀 없음을 IAEA에 당당히 보고하고 국제사회에 선포한 후 추진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금번 한·미 원자력협정 타결에는 상호 협의 하여 농축도 20%미만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도록 개정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SLBM 사출시험을 한 지금이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국가적 의지를 발동해야한다. 우리가 개발하려 할 때 국제사회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이를 설득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핵무기를 갖지 않는다면 북한이 우리를 두려워하겠는가? 무기는 상대방이 두려워해야 효과가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소형화해서 잠수함에 탑재하는 단계에 와 있는데 우리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개발도 주저주저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이용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대응할 것인가? 잠대함 유도탄을 이용해 그들의 핵 기지를 항상 노리고 있다고 하면 과연 통할까?  우리도 북한에 대응할 만한 무기체계 확보를 국민 차원에서 공론화해야 하며 이러한 무기체계는 분명 치명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치명적인 무기는 그야말로 신속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전광석화같이 발사하고 적에게 발각되었을 때 신속하게 도망칠 수 있는 생존능력이 뛰어난 잠수함에서 발사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자력 잠수함 보유 강대국들은 완행열차가 아닌 KTX의 속도로 이동하며 바다 속 어느 곳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적국의 주요 목표물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도록 조준하고 있다. 이것은 기동성이 떨어지고 생존능력이 약한 디젤 잠수함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독일 디젤 잠수함의 아버지 되니츠 제독이 1,200여 척 이상의 잠수함을 잃고 수중에서 20노트 이상으로 무제한 기동할 수 있는 잠수함 개발을 꿈꾸었고, 결국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아버지 리코버 제독이 수중에서 30노트 이상으로 무제한 작전이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했다는 사실과, 나치 독일의 선제 핵개발을 우려한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이 먼저 핵 개발을 하도록 권고함으로써 원자탄이 개발된 사실을 보면, 원자력은 과거에도, 지금도 IAEA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미국만 설득하면 우리도 원자력 잠수함 개발이 가능할 것 같다.

  역사는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을 고수하는 나라이면서 197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원자력 외교로 미국을 설득해서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재처리 시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나라다. 일본은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무쓰라는 상선을 이용해 선박용 원자로 제작 기술을 축적하여 마음만 먹으면 즉시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다. 또한 DRX라는 모델의 소형 원자로를 만들어 심해 탐사 잠수정에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SLBM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금 원잠 건조를 시작해도 10년 정도는 걸린다. 원잠건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더불어 통수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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