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지중해(東亞地中海,EastAsian-mediterranean-sea)적 성격과 역사적 의미 > E-저널 2015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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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저널 2015년 ISSN 2465-809X(Online)

제5호(11월) | 동아시아의 지중해(東亞地中海,EastAsian-mediterranean-sea)적 성격과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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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윤명철, 동국대 교수 작성일15-12-04 12:27 조회3,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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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21세기에 해양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각 국가 간 혹은 지역 간의 갈등이 해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해양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몇 가지 오류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半島史觀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고려 이전 시대의 우리 역사적 공간은 소위 한반도 지역과 대륙의 일부, 그리고 광범위한 해양이었다. 따라서 역사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육지와 해양이란 두 가지 관점에서 동시에 접근해 들어가는 海陸史觀이 필요하다. 또한 중요한 사건이거나 국제적인 사건인 경우에는 동아시아라는 기본단위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도 필요하다.

  필자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21세기 신질서재편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부상과 한민족의 정당한 위치확보를 목적으로 ‘東亞地中海’(EastAsian-mediterranean-sea)모델을 설정했다. 즉 동아지중해 中核調整役割을 대안으로 삼고, 이에 대한 역사적 논리적인 정당성을 모색하고 있다.‘해양사관’에 이어 ‘海陸史觀’을 제시하였고, 구체적인 모델로서 ‘東亞地中海 모델’을 구축하였다. ‘환류시스템 이론’ ‘江海都市論’, ‘海港都市論’ ‘해양방어체제’ ‘해륙국가론’ ‘해륙문명론’ 등의 이론들을 발표했다. 이 글은  동아지중해 체계와 문화적 특성, 그리고 그 모델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와 현재 미래적 가치를 간력하게 서술하였다.       

 

▣ 본  론

  ◎ 동아지중해의 체계

  한민족의 역사는 대륙의 일부분으로서 대륙의 일방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一國史적인 관점을 지양하고, 동아시아 전체사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東아시아는 한반도를 중심축(core)으로 일본열도와의 사이에는 동해 타타르해협 및 남해가 있고,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는 황해라는 內海(inland-sea)가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부와 일본열도의 서부, 그리고 중국의 남부지역(양자강 이남을 통상 남부지역으로 한다)은 이른바 동중국해를 매개로 하여 연결되고 있다. 즉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지중해적 형태를 띄우고 있다.

  지중해는 나름대로 몇 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양문화의 성격을 구비하고 있는 만큼 이동성(mobility)이 강하다. 각 나라들이 內海(inland-sea)를 공유하고, 긴 연안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으므로 국경이 불분명하고 변화가 심하다. 때문에 해양에 대한 이해도 대립되기 쉬워서 海域支配權을 둘러싸고 국가 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 海洋力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중해에서는 지속적인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 질서구축의 軸이 된다. 균형자의 역할이 항상 필요한 것이다.

  한편 지중해는 정치‧군사적인 것 보다는 교역‧문화 등 구체적인 利害관계를 중시하 경향이 있다. 또한 항상 개방적이고 여러 가지의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무역의 이익을 많이 남기고, 문화창조 활동을 활발히 하여왔다. 따라서 국경이나 종족 보다는 문화나 경제개념이 질서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因子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황해 동해 남중국해 동중국해가 모든 나라와 지역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즉 多國間地中海(multinational-mediterranean-sea)에 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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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지중해 해륙교통망>

 

 

 

  ◎ 동아지중해의 문화적 특성

  동아지중해는 어떠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
​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의 대다수 종족이 모여 있다. 한민족과 漢族 그리고 일본열도의 상호교섭은 물론 북방 여러 종족과의 교섭도 모두 이 지역의 해양을 통해서 교류를 하였다. 황해는 東夷族이 개척하였으나, 고조선과 前漢이 첫 대결을 벌인 이후 한민족과 한족은 계속해서 갈등을 벌이면서 황해를 공유하였다. 반면에 동아지중해에서 비교적 외곽인 남해와 동해는 한민족의 바다이었다. 우리는 해양력을 바탕으로 일본열도를 개척하고 植民(settlement)하며 곳곳에 나라를 세웠다. 마치 그리이스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의 연안을 따라가거나 바다를 건너 교역을 하면서 점차 식민지를 세우고, 도시국가(polis)들을 건설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도 지중해적 성격을 띠었다.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 연결되는 수렵삼림문화, 몽골과 알타이에서 내려온 유목문화, 화북의 농경문화, 그리고 남방에서 올라오는 해양문화 등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자연현상과 다양한 문화가 만나 상호교류하고 혼재하면서 발전하였다.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경제형태나 교역방식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것들은 상당한 부분이 해양을 통해서 교류되어 왔으며, 여기서 형성되는 문화는 다양성이라는 지중해 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정착성(stability)문화와 이동성(mobility)문화가 이곳에서 만나 상호보완한 것이다.  
 

  그런데 동아지중해 지역은 정치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힘(power)의 질서에 특성이 있다. 국가들과 지역들은 상호간에 힘의 균형을 잃고, 偏重性을 지닌 경향이 있다. 소위 중국지역이 中心部이고, 그 힘은 우리지역을 거쳐 일본열도로 가면서 점점 周邊部化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력, 군사력 등은 北에서 南으로, 西에도 東으로 진행하는 一進性의 경향을 띠고 있다. 결국 이 지역은 시대와ㅘ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3힘의 中心軸과 몇 개의 副心軸으로 이루진  대결구도이다. 즉 중심축은 중국지역 북방지역 그리고 韓陸島 지역이다. 그리고 축약하여 바다와 직접 면해있고, 역사발전에 구체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을 보면 중국 한륙도 일본열도로 분리되어 2强과 1弱의 構圖로 되어있다.

  그러나 문화는 반드시 정치력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성질이 있다. 또한 문화는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해양문화권에서는 문화교류의 기본이 되는 인간의 이동이 비조직적이고 불연속적이므로 육지질서보다도 더 정치경제로부터 자유롭다. 때문에 이러한 관계가 더욱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여러 지역과 국가들이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때문에 동아지중해의 문화는 정치나 군사력처럼 主와 從, 中心部와 周邊部 邊方의 구분이 뚜렷하며, 방향이 일진성을 띄운 것이 아니다. 즉 바다를 가운데 두고 바다주변의 주민과 문화는 상호영향을 주는 環流시스템을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역사는 대륙을 중심으로 한 육지위주의 질서로서만 해석할 수 없고 자연환경과 역사적 환경 등을 고려한 동아지중해적 성격 속에서 해석을 해야 그 성격을 규명할 뿐 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동아 지중해 모델의 의미와 가치

  동아지중해(EastAsian-mediterranean-sea)란 모델을 적용하여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성격을 규명할 경우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동아시아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동아시아라는 범주 속에서 한 중 일 등의 동북아경제권(Dynamic North-East Asian Economies)은 동아시아에서도 중심부인 동아지중해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중심부를 대륙과 반도와 섬, 즉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따로 따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질서와 육지질서를 공유하고 연결된 하나의 권역으로 본다. 그러므로써 동아시아 역학관계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도가 쉽게 그려지니까 지역의 특성이 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국가 간. 지역 간의 역할분담이라는 도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둘째, 이 동아지중해 개념은 구성국들 간의 공질성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동아시아 3국은 서로에 대한 정서적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다. 다른 권역과 효과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해야한다. 사실 이 지역은 수 천 년 동안 지정학적(geo-politics)으로 협력과 경쟁, 갈등과 정복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역사활동권을 이루어왔다. 예를 들면 한 국가나 왕조의 흥망은 그 당사국가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의 국제질서 재편과 맞물려 일어났다.
고조선과 한의 전쟁, 고구려 백제 등의 갈등이 그러하며, 고구려와 수·당간의 전쟁은 동아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국제대전이었다. 그 결과로 발해와 일본국이 탄생한 사실은 이 지역의 질서를 이해하는데 의미심장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실은 임진왜란 역시 지중해적 질서와 관련된 국제전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전쟁 외에는 실질적으로 국가간, 민족간의 대결은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었다. 지중해국가들, 그리고 유럽대륙 내의 국가들이 심각하게 대결한 사실에 비하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온 편이다.
 

  한편 이 지역은 지경학적(geo-economic)으로는 경제교류나 교역 등을 하면서 상호필요한 존재로 인식하여 왔다. 왜냐하면 자연환경이 워낙 다르므로 생산물의 종류가 색달랐기 때문이었다. 농경문화권에서는 삼림문화나 유목문화 해양문화권의 생산물이 필요했고, 상대적으로 유목이나 삼림문화권에서는 농경문화의 생산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는 적대관계에 있더라도 교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교역, 차교역, 초피 등 모피교역, 철교역, 은교역 등은 이러한 예이다. 아프리카 북안의 카르타고와 그리이스 본토 그리고 흑해연안은 생산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교환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리문화적(geo-cultural)으로도 이 지역의 국가들은 의외로 문화의 공유범위가 넓었다. 샤머니즘으로 유형화된 공통의 신앙을 모태로 유교 불교 등 종교현상 등이 있다. 정치제도 경제양식 한자 생활습관 등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사실은 종족과 언어의 유사성도 적지 않았다. 비농경문화권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의외로 중국도 유목문화 등의 영향(胡漢體制)을 받았다. 이러한 문화의 유사성 때문에 외부세계에서는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공동체로 보기도 하였다.

  셋째, 이렇게 동아지중해 개념을 설정하여 동아시아의 역사를 볼 경우, 이 지역은 과거에도 절박하게 현실성을 가진 공동의 활동범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질적인 지역에 대응하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각 국가 사이에, 민족들 사이에는 씻어버리기 힘든 경험들이 축적되어있고, 역사의 잿빛앙금이 두껍게 깔려 있다.
​  그러나 이젠 역사적 환경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활동단위가 조그만 지역이나 국가가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익의 종류도 달라졌고, 경제행위도 달라졌다. 농경 유목 등 땅을 매개로 삼은 생산양식의 시대가 흘러갔고, 영토의 크기가 전처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이제는 여러 나라들이 국경의 제약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 혹은 무역권을 중시하는 NET(NATURAL-ECONOMIC-TERITORIES)‘자연스런 경제적 영토’개념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예전처럼 영토 쟁탈전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인식을 세계로 확대하면서 동아시아 외에도 다른 종족들과 문화가 있으며, 그것들에 비하면 동아시아 내에서의 차이점은 이질성이 아니라 동질성 내에서의 고유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넷째, 동아지중해 모델은 동아시아의 현실적인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는데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현재 국지 경제권들이 한결같이 해양을 매개로 설정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아시아는 결국 해양을 통해서만이 전체가 연결되며 교섭과 교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냉전질서로 인하여 유일한 연결통로인 바다마져 막혀버린 폐쇄회로였다. 세계질서 속에서 쏘비에트를 맹주로 하는 대륙질서(continental-order)와 미국을 大兄으로하는 해양질서(marine-order)가 격돌하는 폭발점이었다. 때문에 동아시아는 지중해적 성격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체제의 변화로 인하여 바다가 개방되므로써 모든 지역이 단절됨이 없이 연결될 수 있다. 각국의 해안도시와 항구도시들 간의 물류체계도 內海를 중심으로 원활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중해 개념의 설정은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교류의 유일한 통로가 해양임을 명확히 해주고, 특히 경제교역에는 해양의 역할이 절대적이란 사실을 각인시켜줄 수 있다. 물론 6개 장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해양영토분쟁 등 갈등 또한 첨예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섯째, 우리는 자연환경 상으로 동아지중해의 중핵(core)에 있으므로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해양질서를 활용할 경우에 매우 유리한 역사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물류의 허브 문화의 인터체인지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통일을 이룩하면 불롼전하지만 ‘海陸국가’의 형태를 갖출 수 있다. 고구려가 이러한 ‘동아지중해 중핵조정역할’을 활용하므로써 국가발전은 물론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 장보고가 비록 동해를 제외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 지역의 해양을 활용하여 신라와 동아시아의 역사발전 특히 경제나 문화발전에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 ​결  론
 

  동아지중해 모델을 통해서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역사는 초기부터 국제관계 속에 이루어진 측면이 많았고, 문화의 교류 경제적 교역이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 우리역사에서도 상당한 비중이 있었다. 또 구체적인 해양교통로와 해양의 메카니즘이 역사상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때로는 동아시아의 전면적인 질서재편과정에서 해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동아시아 역사에서 주변부가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21세기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내지 한민족의 대응전략을 구사하는데 유효한 모델로서의 가능성도 있다. 이제 국가들의 통합(integration)이 불가능한 동아시아가 협력체 내지 연합체, 혹은 불록을 구성한다면 해양을 매개로한 지중해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지중해와 카리브 및 걸프지중해, 동남아지중해 등과 경쟁하고 대결하는 동아지중해의 형성이 절실하다.

 

<참고문헌>

1.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청노루. 1996.

​2.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사계절. 2000.

3.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학연. 2002.

4.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학연. 2002.

5. 『한국 해양사』. 학연. 2002.

6. 『고구려 해양사 연구』. 사계절. 2003.

7. 『윤명철 해양 논문 선집 8권』. 학연. 2012.

8. 『해양사 연구방법론』. 학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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