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聖雄)과 패장(敗將)이 자리바꿈 하고 있다. > E-저널 2016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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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저널 2016년 ISSN 2465-809X(Online)

제8호(02월) | 성웅(聖雄)과 패장(敗將)이 자리바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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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무일 작성일16-03-17 16:38 조회2,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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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TV가 2004년 9월4일 첫 화면을 내보낸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2005년 8월28일 104회 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의 원작으로 소설 ‘불멸’을 선정했다는 보도를 보고 역사를 왜곡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시청했는데, 역시나 시작부터 이순신과 원균의 위치가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각종 매체들은 “소설 불멸에 이어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까지 이순신 열풍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성웅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 사이를 오가며 박제화된 영웅의 이미지를 벗겨내어 인간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라는 등 찬사를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원균 명장론자들은 “이순신은 밤에 몰래 혼자 승첩장계를 먼저 보내어 원균의 공을 가로챘다.” “원균도 1등공신으로 선정될 정도로 큰 공을 세웠으니 복권이 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난 1996년 한남대 김 모 교수는 소설 ‘불멸’에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을 궤멸시키고 있는 차에 통제사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죽었다.” (불멸 4권 135쪽)

  “명량대첩을 거둔 것은 전날 밤 꿈에 원균처럼 싸우라는 계시를 받고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멸 4권 232쪽)
고 하는 등 이순신 죽이기가 여기까지 이르렀다.
  지난 1년 동안 史劇이라는 이름하에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졸장부로 폄훼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유년시절
  
  또래들과 참외서리를 하던 중 유약한 순신만이 기절을 한다. 꼬마 부대장 원균은 “건천동 부대는 가장 강한 부대이다. 부대원은 겁이 없어야한다”고 말하자, 순신은 “나는 겁쟁이야. 균 형님 말이 맞아”라고 한다.
  순신은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군사훈련 기관인 훈련원 개구멍으로 들어가 창 1개를 훔쳐 균에게 바쳐 “원균 대장에게 딱 어울린다”고 아부한다.
  ※ 이 충무공 전서(行錄) : 어려서 유희할 때도 매양 진 치는 형상을 하는데 모든 아이들은 반드시 公을 장수로 떠받들었다.
  ※ 징비록 : 순신은 어릴 때부터 얼굴 모양이 뛰어나고 기품이 있었으며 남에게 구속받지 않으려 했다.

  유성룡은 1542년 그의 외가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3살 때 상경한다. 1545년생인 이순신이 유성룡과 3살 차이인 것을 고려하면 서울에서 아산으로 이사한 시기는 10살 이후로 보인다.
  원균은 1540년 경기 평택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묘는 평택시 도일동 산 82번지에 있다.

 
청년시절

 

  方震의 집에 도적 떼가 침입, 방진의 딸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할 때 순신은 도망가고 원균이 나타나 격투 끝에 도적떼를 물리친다.
  ※ 이충무공 전서(行狀) : 공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아들 셋, 딸 하나를 두었다.
  ※ 이충무공 전서(方夫人傳) : 나이 겨우 12세 때인데 火賊들이 안마당까지 들어오므로 방진이 화살로 도둑을 쏘다가 화살이 다 되자 방안에 있는 화살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자 부인이 “여기 있습니다”하고 급히 베 짜는데 쓰는 대나무를 한 아름 안아와 다락에서 던지니 소리가 마치 화살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도둑들은 화살이 아직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곧 놀라 도망갔다.

 

전라 좌수사 임무교대
 
 병조판서(정탁); 원균이 청렴하고 충직하며 백성을 사랑하여 전라 좌수사로 천거합니다.
 이순신(정읍현감): 좌수사 취임식에 응당 참가 해야죠
 원균: 정읍현감은 어릴 적 친구이고 녹둔도 전우이다.
 원균: (전라좌수직 파직한다는 왕의 교지를 팽개치고) 나는 잘못한 것 없다.
 이순신: 원 수사는 강직하고 용맹한 장수이다. 왜군은 한발 한발 다가오는데 원 수사의 빈자리를 누가 매울 것인가?
 선조: 원균을 밟고 좌수사가 될 수 있겠는가?
 이순신: 해보겠습니다. 보내 주십시오.
 원균: 자네(순신)가 그렇게 줄타기를 잘 할줄 몰랐네. 전라좌수사 직을 훔친 이유가 뭔가?
  ※ 왕조실록: (선조 24년 2월4일) 전라 좌수사 원균은 전에 수령으로 있을 적에 고과성적이 下로 평가되었는데 겨우 반년이 지난 오늘 좌수사에 영전함은 마땅치 않습니다. 교체하십시오.
  (선조 24년 2월8일) 전라 좌수영은 적을 맞는 지역이어서 방어가 매우 긴요한데 새 수사 유극량은 가문이 한미하여 지나치게 겸손합니다. 체통이 문란하고 호령이 시행되지 않으니 교체시켜야 합니다.
  ※ 이충무공 전서(행록): 辛卯年(47세) 2월13일에 전라좌도 水使로 임명되어 정읍으로부터 부임했다.

 

좌수사 초도순시

 

 정운(녹도만호): “부당한 인사(이순신 좌수사 발령) 받아들일 수 없다” “저런 놈을 좌수사로 보냈는지, 전임 元 水使는 달랐어요”
  (부대관리 잘 못한 사도첨사 곤장 치는 현장에서)
  “우리들 중 곤장 맞을 놈은 바로 좌수사 네 놈이야”
 이순신: “ 정 만호, 자네 군사는 잘 키웠으나 수군에 필요 없다”
 정운: (녹둔도 전투에서 부하를 두고 도망간 패군장수로 보고하여 백의종군한 사건) “패배한 지휘관을 모시는 것은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 이순신: “난 패군지장이야, 수많은 부하를 죽였지. 그렇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걸세”
  ※ 난중일기: (임진년 2월 22일) 아침에 공무를 보고 녹도로 향하다. 녹도만호(정운)의 애쓴 정성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임진년 2월 25일) 사도에 이르니 여러 가지로 전쟁방비의 결함이 많다. 군관과 색리에게 벌을 주고 사도첨사를 잡아들이다.
  ※ 이 충무공 전서(행록): “내가 병력이 약하기 때문에 여러 번 수비병을 더 보내 달라고 청했으나. 병사가 허락하지 않았음은 공문이 분명히 남아 있을뿐더러 힘써 싸워 적을 물리치고 우리 사람들을 도로 찾아 왔는데, 패군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엇에 의거한 것이요”

 

  전라좌수영 거북선

 

  신립, 이일, 원균 등 참관 하에 거행된 진수식에서 거북선이 침몰하여 사망 10명, 실종 30명, 중상 8명 인명 피해 발생
  신립: (지휘봉으로 이순신의 복부를 치면서)“철선을 만들어 바다에 뜰 것인가”
원균: 해전전술 운운 하는 등 “네 놈(이순신)이 하는 짓거리는 모두가 엉망이야”
정만호: 좌수사는 제 정신이 아니야. 신립, 이일, 원균 장수들이 모두 수군 폐지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 수사는 거북선을 재 건조하겠다고 하니
선조: 李 水使는 군영을 이탈해 궐내로 난입했느냐?
신립: (어전회의 석상에서) 이순신 이놈 궐내로 난입하다니
이순신: 수군폐지 거두어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여기(궐내)가 내 무덤이 될 것입니다.
  ※ 난중일기:(임진년 2월 8일) 거북선에 쓸 帆布 29필을 받았다.
    (임진년 3월 27일)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임진년 4월 12일) 석후에 거북선을 타고 지자포, 현자포를 쏘아 보았다.
  ※ 옥포승첩 계본: (임진년 5월 10일) 돌격장이며 신의 군관인 이언량이 7일 옥포해전에서 왜 대선 1척을 당파하였습니다.
  ※ 이 충무공 전서(행록): 조정이 신립의 장계로 인하여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만 전력하자 公이 곧 장계하되 “바다로 오는 적을 막는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으니 수군 육군의 어느 한 가지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고 하니 조정에서도 그 의견을 옳게 여기었다.

 

  칠천량 해전

 

  칠천도 외줄포에서 참패한 원균은 많은 부하들과 함께 춘원포에 상륙, 도망가다가 왜군에 포위돼 조총세례를 받고 죽는다.
원균: (순천부사 우치적에게) 상관으로서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살아서 이순신에게 나의 마지막 패배를 전하라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그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부디 그대들은 살아 돌아가 순신의 충직한 부하가 되어다오”
  ※ 은봉전서
 원균: 나는 통제사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순신에게 설욕한 것을 상쾌하게 여길 뿐이다.
 동암공: 적을 깨뜨려 그 전공이 능히 순신의 위에 올랐을 때 설욕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왕조실록: (선조 30년 7월 22일) 신(선전관김식)은 통제사 원균, 순천부사 우치적과 배에서 빠져나와 상륙했다. 원균은 늙어서 뛸 수 없었으므로 칼을 짚고 외로이 소나무 밑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신이 달아나면서 돌아보니 왜놈 6-7명이 칼을 휘두르며 원균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원균의 생사는 알 수 없다.
  ※ 원균을 위한 변명(이재범 저): 공은 할 수 없이 배를 버리고 해안으로 올라갔는데 적이 따라와서 목을 베어갔다. 때는 정유년 7월16일이니 나이 58세였다.

 

  역사 바로 세우기(?)
 
  이순신의 유년 시절부터 칠천량 해전까지 일부 장면만 재생해 보았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원균을 재평가 한다는 미명하에 원균에게 유리한 것이라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고 이순신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조차 확대 포장하는 것으로 일관하여 역사 기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평생 두 번 패한 기록밖에 없는 수군장수가 국민으로부터 성웅으로 존경받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충무공 이순신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재 키우기보다 인재 죽이기에 열중하는 우리의 풍토’를 치유하는 데는 400년이라는 세월도 한참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욱이 군 조직에서 상상도 못할 발언들 “저런 놈을 좌수사로 보냈는지,” “ 李 水使는 군영을 이탈해 궐내로 난입했느냐?”라는 등 군을 폄훼하고 군인의 명예나 가치를 짓밟는 장면에는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게다가 역사교육이 부족했던 장병들에게 올바른 충무공상을 바로잡아 주어야할 위치에 있는 담담자의 코멘트가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누른다.
  “학교에서의 역사교육 시간 단축으로 충무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공백을 매워주었다.” “이전의 성웅적 이미지만을 강조한 데서 벗어나 보통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은 외국인들까지도 “이 세상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 “충성심과 용기면에서 실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이상적인 군인”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한국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런 분에게 공영방송 KBS가 모욕과 폄훼를 가하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작가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이순신은 끝내 쿠데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왜 수군과 맞서 싸우다 관음포에서 장열이 전사했지만, 평생 이순신과 나폴레옹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던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장수의 길을 버린 이 정치인은 왕실과 조정이 자신을 핍박하고 목숨의 위협마저 받는 상황에서도 철두철미 본분을 다한 이순신의 최후 앞에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했을까.
  정치적 시련을 맞을 때마다 현충사를 찾고 충무공 어록을 되뇌는 정치인들은 참아둔 전위(前衛)에 나서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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