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 전쟁(Punic War) 연구 >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목록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제21호(03월) | 포에니 전쟁(Punic War) 연구

페이지 정보

Written by 조덕현(충남대학교) 작성일17-04-04 10:53 조회3,548회 댓글0건

본문

포에니 전쟁(Punic War) 연구

 

조덕현(충남대학교)

 

Ⅰ. 전쟁의 개요

 

기원전 9세기에 페니키아가 앗시리아(Assyria)의 침공을 받아 패망한 후, 지중해의 통상 패권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에게 돌아갔다.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던 카르타고(라틴어로는 Punic)는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해상무역을 활발히 하였으며, 지중해에서 해양강국이 되어 스페인을 식민지화하고 시실리(Sicily)를 그들의 세력 아래 두어 지중해 통상을 지배하였다.
한편, 기원전 3세기경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Rome)가 점차 그 세력을 지중해로 확장해 나갔다. 그리하여 카르타고와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충돌을 피할 수 없어 전쟁을 치렀는데, 이것이 세 차례에 걸쳐 약 120년 동안 진행된 포에니 전쟁(Punic War, 264~146B.C.)이다. 이 전쟁은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에 걸친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264~241B.C.)은 주로 시실리 쟁탈을 위한 지상전투에서 시작되었지만 전쟁의 결과는 해전에 의해 좌우되었다.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 시에 있었던 밀래 해전(Battle of Mylae, 260B.C.)과 에크노무스 해전(Battle of Ecnomus, 256B.C.) 등 여러 해전에서 패하자 이것이 화근이 되어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로 인해 로마는 시실리에서 카르타고 세력을 축출하고 시실리를 그들의 속주로 삼았다.
로마가 지중해 중부의 제해권을 장악함에 따라 제2차 포에니 전쟁(210~202 B.C.)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 Barca)은 감히 해상으로 로마를 침공하지 못하고 스페인 원정을 시작하여 알프스 산맥을 넘는 험난한 육로 원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칸네 전투(Battle of Cannae, 216B.C.)를 비롯하여 여러 지상 전투에서 로마군을 격파하였으나, 16년간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치르는 동안 휘하 지상군의 절반을 잃었다. 또한, 제해권이 로마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본국으로부터 증원군과 보급을 지원받지 못해 결국 로마를 정복하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Scipio Africanus)가 제해권을 바탕으로 오히려 아프리카를 침공하였다. 이에 한니발은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급히 귀국하였으나, 자마 전투(Battle of Zama, 202B.C.)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하고 말았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역시 로마의 승리로 끝났으며, 카르타고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스페인을 비롯한 모든 해외 영토를 상실하였다.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한 카르타고는 제3차 포에니 전쟁(149~146B.C.)에서 로마군의 침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카르타고는 물론 카르타고의 동맹국이었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그들의 속주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지중해는 로마의 내해가 되었고, 지중해의 패자가 된 로마는 부를 축적하고 그 세력을 크게 떨쳐 대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Ⅱ. 포에니 전쟁 시의 주요 해전

 

1. 밀래 해전(Battle of Mylae, 260B.C.)


로마와 카르타고 전쟁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해전은 대부분 제1차 포에니 전쟁 중에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이때 벌어진 중요한 해전의 경과와 해전이 전쟁의 추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로마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해양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는 카르타고의 함선과 같이 기동력 있는 함선을 로마 자신과 동맹국이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과 승조원들의 수준도 훨씬 뒤떨어진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함대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로마는 점차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로마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시실리와 이탈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의 힘을 빌어 함선과 선원을 준비하였다. 우선적으로 그들은 좌초된 카르타고의 함선을 모방하여 1년 만에 125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건설하였다. 함선을 건조하는 동안 로마는 육상 훈련대에서 노수를 양성하기 위한 노젓는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즉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또한, 로마는 뒤떨어진 해상전술을 보완하기 위해 두 가지 획기적인 변형을 모색하였다. 로마 군단의 병사들이 백병전에서는 카르타고의 병사나 선원들보다 우세하다고 확신했던 그들은 해상에서 지상 전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로마는 커버스(corvus)라는 일종의 회전식 부교를 창안하였는데, 이 부교는 길이10.9m×폭1.2m 정도였으며 함선 선수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 두었다가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다가 적선이 가까이 오면 적선의 갑판에 걸쳐 끝 부분에 있는 갈고리가 적선을 잡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로마의 병사들이 이 커버스를 타고 적선에 뛰어 올라 백병전을 수행한다는 전술을 계획하였다.

 

652b5c0285a40677fd9fb143629ec316_1491270

  <그림 1> 로마가 개발한 커버스
 
또한, 로마 함선은 선수와 선미에 일종의 포탑인 발사대를 설치하였다. 적선에 뛰어드는 아군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곳에서 나머지 병사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동시에 적군이 자기 함선에 뛰어오르는 것을 방해하였다. 로마는 이렇게 개선된 함선을 비밀무기로 준비한 후 밀래 해전에서 기습적으로 사용하였다.
기원전 260년에 시실리 북동부 해안에서 발생한 밀래 해전은 제1차 포에니 전쟁 시에 해상전에 뛰어난 카르타고함대와 로마의 신생함대가 최초로 격돌한 해전이었다. 로마의 집정관 두일리우스(Gaius Duilius)가 로마 함대를 지휘하였고, 한니발(Hannibal : 제2차 포에니 전쟁 시의 한니발 장군과는 동명이인) 장군이 카르타고 함대를 지휘하였는데 양측의 함대는 각각 100척 정도로 구성되었다.
카르타고 함대는 로마함대를 과소평가하여 진형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돌진하였다. 그러나 카르타고 선두함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커버스에 잡히고 말았다. 카르타고의 함선들은 커버스를 피해 현측과 선미 쪽에서 충각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커버스에 잡히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었다. 결국 카르타고 함대는 50척을 나포당하고 패주하였다.
밀래 해전은 로마의 새로운 해상전술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던 해전이었다. 그 결과 패주한 카르타고는 제해권을 상실하였으며, 반면 로마는 코르시카(259B.C.)와 몰타(257B.C.)를 점령하였다. 이 해전의 결과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로마함대에 해전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보다 결정적인 해전은 다음에 일어난 에크노무스 해전이었다.

2. 에크노무스 해전(Battle of Ecnomus, 256B.C.)
기원전 256년에 시실리 남서 해안에서 발생한 에크노무스 해전은 포에니 전쟁 시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해전 가운데 양측의 주력함대가 격돌했던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으며 역사적으로 관심을 끄는 중요한 해전이었다. 로마의 집정관 레귤러스(Marcus A. Regulus)와 불소 론거스(Lucius M. Vulso Longus)가 지휘하는 330척의 함선이 아프리카를 침공하기 위하여 시실리를 출항하였는데, 이 함대에는 약 15만 명의 선원과 병사가 탑승하였다. 한편, 하밀카르(Hamilcar Barca)와 한노(Hanno)가 지휘하는 카르타고의 함선 350척이 로마군과 비슷한 병력을 싣고 시실리의 남서 해안인 에크노무스 갑 근해에서 로마 함대와  조우하였다.

 

 

652b5c0285a40677fd9fb143629ec316_1491270 

 

<그림 2> 에크노무스 해전   
 
양측 함대는 각각 4개 전대로 구성되었다. 로마 함대에서는 2개 전대가 ∧형 진형(wedge formation)으로 전위에 위치했고, 제3전대는 수송선단을 예인했으며 제4전대는 후위를 방호하였다. 카르타고 함대는 4개 전대가 모두 횡렬진으로 전개하였다. 카르타고 함대는 중앙의 2개전대가 후퇴하면서 로마 함대의 두 전위전대를 유인하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규모의 전대로 로마 함대의 후위와 수송선단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카르타고의 양익 전대는 로마 함대의 측면을 신속히 돌아 공격하였는데, 좌익전대는 로마의 수송선단을 공격하고 우익전대는 로마 함대의 후위전대를 공격하여 해안 쪽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 해전에서 로마 함대는 훌륭한 합동작전 발휘하였는데, 로마 함대의 전위전대가 카르타고 중앙전대와 전투를 중단하고 신속하게 후위전대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로마 함대의 후위를 공격하던 카르타고 양익전대가 오히려 포위당해 1개 전대는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1개 전대는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카르타고 함대는 우세한 해상전력에도 불구하고 로마 함대의 커버스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패하고 말았다. 이 해전에서 카르타고 함대가 거리를 유지하고 접근전을 피했더라면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해전에서 카르타고 함대는 30척이 격침되고 64척이 나포되었다. 반면에 로마 함대는 24척이 침몰하였다. 이 해전의 결과는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해전에서 승리한 로마 함대는 아프리카를 공격하는 항로를 열어 카르타고 부근의 클루페아(Clupea)에 상륙하여 카르타고를 공격할 수 있었다.
로마군에게 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카르타고는 강화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레귤러스가 요구한 조건 - 시실리, 사르디니아, 코르시카 및 카르타고 함대의 항복 - 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에 카르타고는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카르타고는 다행히 스파르타의 크산티푸스(Xanthippus)가 지휘하는 그리스 용병의 지원을 받아 지상전에서 로마군을 패배시켰다.(255B.C.)

 

3. 로마 함대의 재난


로마군이 카르타고 영토에서 패하자 그 해에 약 400척의 로마 함대가 잔여 병력을 시실리로 철수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귀환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전 함대가 시실리 남쪽 해안에서 난파당하는 재난을 당했다. 이 재난으로 인해 로마는 함선 280척과 병력 10만 명을 잃었는데, 이것은 세계 역사상 최대의 난파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2년 후에 로마 함대는 파노르무스(Panormus)에서 출항하여 티레니에 해(Tyrrhenian Sea) 횡단을 시도하였지만 또 다시 난파로 인해 150척의 함선을 잃었다. 이후 당분간 로마는 해상에서 전투를 포기하였다.
기원전 249년에 집정관 풀처(Publius C. Pulcher)가 지휘하는 로마의 봉쇄함대와 아드허발(Adherbal)이 지휘한 카르타고 함대가 드레파눔(Drepanum)에서 교전하였다. 양측의 함대는 각각 200척 정도로 구성되었다. 교전 결과 로마 함대는 93척의 함선을 잃고 8,000명이 전사했으며 20,000명이 포로가 되었다. 이에 비해 카르타고는 단 1척의 손실도 없었다. 드레파눔 해전은 포에니 전쟁 기간 중 카르타고함대가 승리한 유일한 해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에 로마는 시실리에 군수지원을 하려던 함대가 이 섬 남쪽 해안에서 폭풍우를 만나 많은 함선을 잃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난파로 인해 로마 함대는 700척 이상의 함선과 200,000명 이상의 인원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는 해상 전투를 단념하고 시실리에서 지상 전선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수년간 카르타고는 로마 함대의 대항이 없는 가운데 시실리에 증원군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연안을 유린하였다.

 

4. 아에가테스 제도 해전(Battle of Aegates Islands, 241B.C.)


연속된 재난 속에서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재기한 로마함대가 일격으로 카르타고 함대를 격파한 것이 아에가테스 제도 해전이었다. 로마는 상인과 시민 그리고 선주들이 낸 개인적인 기부금으로 200척의 함선을 다시 건조하였다. 새로운 로마함대는 시실리의 카르타고 기지를 봉쇄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카르타고 역시 시실리의 기지를 지원하기 위해 한노의 지휘 아래 200척의 전투함대를 급파하였다. 집정관 카툴루스(Gaius L. Catulus)가 지휘한 로마 함대는 서해한의 아에가테스 제도 근해에서 카르타고 함대와 조우전을 벌였다. 

652b5c0285a40677fd9fb143629ec316_1491270 

<그림 3> 포에니전쟁, 264~146 B.C.


이 해전에서 로마함대를 경시했던 카르타고함대는 함선 50척이 침몰하고 70척이 나포되었으며 남은 세력은 아프리카로 도주하였다. 로마함대는 한 번의 공격으로 다시 제해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제 카르타고는 해상으로부터 지원 없이 시실리를 지탱할 수 없게 되자 시실리를 완전히 포기하였다.

 

Ⅲ. 포에니 전쟁의 결과와 교훈

 

아에가테스 제도 해전을 마지막으로 제1차 포에니 전쟁은 막을 내렸다. 로마는 마지막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거액의 배상금을 받는 한편 시실리에서 카르타고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고 시실리를 속주로 만든 데 이어 사르디니아와 코르시카도 속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시실리를 확보함에 따라 그 주변해역의 제해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해권의 확보가 결국 제2차 및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로마가 해양강국 카르타고를 격파하고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강력한 정치적·군사적 조직력 그리고 창의적 재능을 바탕으로 이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함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인식한 로마는 함대를 조직적으로 건설하고 해상에서 지상전술을 적용함으로써 결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더욱이 여러 차례 난파를 당하여 많은 함선을 잃었지만 다시 함대를 재건한 로마의 국가적 노력과 능력은 대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외에 여러 해전에서 로마함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전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로마함대는 커버스라는 장치를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지상 전술을 해상 전술에 적용하였다. 둘째, 로마함대는 지휘체계와 협동작전이 뛰어났다. 셋째, 로마함대는 에크노무스 해전에서 내선의 이점을 활용하여 분리된 적의 전대를 공격함으로써 적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 있었던 폭풍우에 의한 난파는 로마의 신생함대가 항해 경험과 선박 조종술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해양강국인 카르타고는 국가를 지탱하던 해군력을 상실함으로써 더 이상 국가생존 자체를 보장할 수 없게 되어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카르타고의 패인을 살펴보면, 카르타고는 국가의 조직력에서 로마에 뒤졌던 것이다. 특히 카르타고 함대는 로마 함대를 경시하였으며, 로마 함대의 전술적 기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포에니 전쟁이 주는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해양이 포함된 전쟁에서 제해권은 전쟁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는 제해권을 상실함으로써 로마군에게 본토 침공을 허용하였으며 결국 전쟁의 원인이었던 시실리를 상실하고 패전하였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로마함대가 시실리 근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험난한 육로 원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많은 지상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끝내 고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로마군의 침공을 받고 패전하였다.
둘째, 전술적 기습은 전쟁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한다. 로마함대는 당시로서는 신무기인 커버스와 발사대를 창안하여 카르타고 함대에 대하여 전술적 기습을 가함으로써 여러 해전에서 승리하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와 같이 기습은 전투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전비태세를 향상시키기 위한 창의적인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로마함대는 해상전술에 뛰어난 카르타고함대를 상대하기 위하여 적의 충각전술을 허용하지 않고 동시에 로마군의 우수한 지상전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커버스와 발사대를 창안하였다. 이와 같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활용하는 창의적인 전술은 고대전쟁은 물론 현대전쟁에서도 적용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기우셉 피오라반조 저・ 조덕현 역, 『세계사 속의 해전』 (서울 : 신서원,
     2006).
김주식, 『서구해전사』 (서울 : 연경문화사, 1997).
버나드 몽고메리 저・승영조 역, 『전쟁의 역사』 (서울 : 책세상, 2004).
웨인 휴스 저・조덕현 역, 『해전사 속의 해전』 (서울 : 신서원, 2009).
육군사관학교, 『세계전쟁사』 (서울 : 봉명, 2001).
조덕현, 『전쟁사 속의 해전』 (서울 : 신서원, 2016).
최용성, 『젊은이를 위한 세계전쟁사』 (서울 : 양서각, 1992).
Armstrong, Jeremy. Early Roman Warfare: From the Regal Period to
    the First Punic War, New York: Pen and Sword, 2016.
Caven, Brian. The Punic Wars, New York: Barnes & Noble, 1992.
Cornell, T.J. The Beginnings of Rome: Italy and Rome from the
    Bronze Age to the Punic Wars(c.1000-264 BC).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5.
Editors, Charles R. The Punic Wars, New York: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2015.
Goldsworthy, Adrian. The Punic Wars, Cardiff: Cassell, 2001.
                    . The Fall of Carthage: The Punic Wars,
    265-146BC. Cardiff: Cassell, 2007.
Hanson, Victor D. The Wars of the Ancient Greeks and Their
    Invention of Western Military Culture, New York: Cassell, 1999.
Lazenby, John. The First Punic War,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6.
Linton, Barry. Hannibal Barca, The Greatest General: The Meteoric
    Rise, Defeat, And Destruction Of Rome's Fiercest Rival, New
    York: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5.
Mason, W.F. A Synopsis of Roman History, B.C. 31 - A.D. 37,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Libraries, 2012.
Miles, Richard. Carthage Must be Destroyed, New York: Penguin
    Books, 2012.
Millett, Allan R. and Murray, Williamson. Military Effectivenes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Potter, E.B. Sea Power: A Naval History, Annapolis: Naval Institute
    Press, 1981.
Rawson, Edward K. Twenty Famous Naval Battles, New York: Ulan
    Press, 20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0건 7 페이지
제21호(03월) Written by 김종하(정책학박사, 한남대 경영·국방전략대학원장) | 04-04 | 4196 한국 해군, 미래형 추진체계 잠수함 확보 서둘러야 한다 인기글첨부파일
한국 해군, 미래형 추진체계 잠수함 확보 서둘러야 한다 김종하(정책학박사, 한남대 경영·국방전략대학원장) I. 들어가며 북한과 주변국들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 연안에서 근해, 근양, 그리고 원양에 이르기까지 바다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수호, 관철할 수 있는 강력한 해군력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상과 수중, 공중…
제21호(03월) Written by 조덕현(충남대학교) | 04-04 | 3549 포에니 전쟁(Punic War) 연구 인기글첨부파일
포에니 전쟁(Punic War) 연구 조덕현(충남대학교) Ⅰ. 전쟁의 개요 기원전 9세기에 페니키아가 앗시리아(Assyria)의 침공을 받아 패망한 후, 지중해의 통상 패권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에게 돌아갔다.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던 카르타고(라틴어로는 Punic)는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해상무역을 활발히 하였으며, 지중…
제20호(02월) Written by 최양선(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 02-27 | 1646 동아시아 해양분쟁과 한미동맹의 딜레마 인기글첨부파일
동아시아 해양분쟁과 한미동맹의 딜레마 최양선(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1. 서 론 오늘날 한국의 해상교통로(이하 해로)는 전 세계로 뻗어있고 한국의 이웃국가들인 중국 및 일본과 해로 대부분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최대의 경제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여 동아시아 해양에…
제20호(02월) Written by 최명한(한국해양대학교 군사대학장, 전 주일무관) | 02-27 | 2774 일본의 새로운 해양전략 구상과 해상자위대 전력 강화 인기글첨부파일
일본의 새로운 해양전략 구상과 해상자위대 전력 강화 최명한(한국해양대학교 군사대학장, 전 주일무관) Ⅰ. 서 론 최근 일본은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과 해양진출, 그리고 도서 영유권 및 해양자원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을 자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센카쿠 열도(尖角諸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제20호(02월) Written by 박영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극지연구센터장) | 02-27 | 1904 해양주권 확보를 위한 해양경비력 강화 시급 인기글첨부파일
해양주권 확보를 위한 해양경비력 강화 시급 박영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극지연구센터장) Ⅰ. 서론 현재 한반도는 대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12일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와 그 다음 날 김정남 피살, 조어도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중·일의 대립 격화, 2월 22일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 인사 …
제20호(02월) Written by 신현수(산업공학박사, 합동군사대학교 무기체계교관) | 02-27 | 4596 해양무인체계 운용개념 및 발전방향 인기글첨부파일
해양무인체계 운용개념 및 발전방향 신현수(산업공학박사, 합동군사대학교 무기체계교관) Ⅰ. 서론 해양무인체계는 위험(Dangerous)하거나 오염된(Dirty) 해역, 지루하게 반복되는(Dull)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해역, 즉 3D 임무를 수행하는 해역에서 운용함으로써, 인력을 절감하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유인체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20호(02월) Written by 전재효 (산업공학박사) | 02-27 | 1692 임무중심 국방재원배분과 분석전문성의 적극적 활용 인기글첨부파일
임무중심 국방재원배분과 분석전문성의 적극적 활용 전재효 (산업공학박사) 1. 북한 비대칭위협의 증대 2017년 2월 12일 일요일 아침,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트럼프 취임이후 미국을 첫 방문한 아베 일본총리가 플로리다 팜비치 골프리조트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던 시각, 북한은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에서 동해상을 향해 중거리 탄도미사일 한 발을 쏘아 올렸다. 다음날…
제19호(01월) Written by 양욱 | 02-13 | 2017 동북아의 항모경쟁- 제해권을 둘러싼 항모경쟁의 시작 - 인기글첨부파일
동북아의 항모경쟁 - 제해권을 둘러싼 항모경쟁의 시작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 전세계에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항모는 어디에 있지?’라는 것이다. 무려 10척의 항모를 가진 미국은 떠다니는 항공기지의 첨단항공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힘을 시연하고 있다. 2016년 하반기에 무수단 IR…
게시물 검색

HOME  |   BOOKMARK  |   BACK  |   CONTACT US  |   ADMIN
TOP
주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국가안보융합학부 1103호) / 대표전화 : 042-821-6082 / 팩스번호 : 042-821-8868 / 이메일 : komsf21@gmail.com
Copyright © 한국해양안보포럼. All rights reserved.[본 사이트는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