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력을 경시했던 나폴레옹의 몰락 >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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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호(08월) | 해양력을 경시했던 나폴레옹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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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 보 연(항공우주전략포럼 연구위원) 작성일17-08-29 16:25 조회2,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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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력을 경시했던 나폴레옹의 몰락


 정 보 연(항공우주전략포럼 연구위원)

 

Ⅰ. 서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같이하고 있다. 역사상 정복자로 알려진 인물로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과 몽골의 칭기스칸(Chinggis Khan),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과 독일의 히틀러(Adolf Hitler)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생전에 수많은 국가들을 정복하여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의 경우, 그가 죽은 후에 바로 제국의 붕괴가 일어났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한때 유럽대륙을 호령하였으나 러시아 침공의 실패로 그들이 황제와 총통으로 재임한 기간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는 이들의 제국들은 11년 밖에 유지되지 못하였다. 반면에 칭기스칸은 그의 사후에도 중국의 원나라와 러시아의 킴차크칸국과 인도의 무굴제국 등 여러 제국을 이루었으며, 이들 제국들은 원나라를 제외하고 250년 이상을 유지하였다.  칭기스칸을 제외한 이들 3명의 정복자가 이처럼 많은 국가를 정복하여 역사상 대 제국을 건설하고도 이처럼 짧은 기간에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사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들 중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생전에 패전없이 정복을 수행하였으나 정복과정에서 병에 걸려 죽음으로써 그의 제국이 붕괴되었고,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정복자보다는 독재자와 살인자로 비유되는 관계로 제외하고, 나폴레옹의 경우를 연구해 보고자 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프랑스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왕정의 붕괴로 해체되어 버린 군대를 재정비한 후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당시의 유럽의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를 격파하는 등 루이 14세 이후에 쇠락해 가던 프랑스를 다시 한 번 유럽의 강대국으로 건설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하였으며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프랑스의 지배하에 두는 등 승승장구하였으나, 러시아 침공의 실패와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의 패배로 황제에 즉위한 지 11년 만에 몰락하게 된다.  여기서는 그의 몰락을 가져온 여러 사유 중에서 영국과 두 번에 걸쳐 수행했던 해전의 결과를 통하여 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나폴레옹은 사관학교 시절에 역사와 과거의 위대한 장군들의 전략과 지휘를 집중하여 연구하였으며, 대혁명 이후에 장군이 되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영국이 프랑스의 경쟁자이자 견제의 대상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과 두 번에 걸쳐 해전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영국이 인도 등 식민지로부터 본국을 연결하는 고리였던 이집트를 정복하기 위하여 원정에 나설 때 영국과 벌였던 나일해전과 유럽대륙을 어느 정도 평정한 후에 수행했던 트라팔가 해전이다. 영국에 모두 패배했던 이 두 해전의 사례를 통하여 나폴레옹의 몰락배경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1. 나일해전


 나일해전 혹은 아부키르만 해전(The Battle of the Nile or Aboukir Bay ; 1798. 8. 1~2.)은 대륙 제패를 꿈꾸는 프랑스가 바다 건너에서 대불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되었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과정에서 영국과 벌인 해전이다.
 인도를 식민지로 둔 영국은 본국과의 연락을 위해 이집트를 경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도에서 영국의 지위를 위협하기 위하여 나폴레옹은 이집트원정을 추진하였으며 이는 영국과 인도, 인도와 지중해의 관계를 끊으며, 더 나아가서 인도에 대한 식민지 탈취를 염두에 둔 전략적 군사행동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아일랜드 침략을 계획하고 있다는 거짓정보를 퍼트려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프랑스의 지중해 함대를 북방으로 집결토록 하였다. 이 전략은 성공하여 영국해군은 서지중해 방어에 돌입했으며 나폴레옹은 아무런 방해없이 이집트 원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상륙한 후 약 3주 동안 넬슨(Horatio Nelson) 휘하의 14척으로 구성된 영국함대는 서부 지중해에서 프랑스 함대를 찾기 위해 순찰을 하고 있었고 15척의 프랑스 함대가 이집트 정복을 지원하기 위해 출항했다. 양측함대는 8월 1일 만났다. 프랑스군은 아부키르 만에 정박하고 있었다. 브로이( Francoisl C. Brueys )제독은 넬슨의 명성을 알기에 그의 전술을 충분히 연구하고 있었으며, 프랑스 함대가 영국함대에 의해 양분되고 야습에 의해 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전선을 닻으로 연결하여 고정하였다. 브로이는 전투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으나 영국군은 야습을 감행하였다.
 해전은 프랑스의 기함 르 오리앙(L'Orient)의 대포사격으로 영국의 전열함 벨레로폰(Bellerophon)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Alexander)와 스위프트슈어(Swiftsure)의 공격으로 격침되었고 전선의 말미에 있던 4척만이 도망할 수 있었던 프랑스 해군의 완벽한 패전이었다.
 한편, 나폴레옹은 이집트 정복을 끝내고 시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출진하였으나 파리의 정치적 상황 급변으로 몇 명의 측근과 함께 몰래 이집트를 탈출했고 제1집정관이 되었으며, 1804. 11. 2.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나폴레옹의 탈출 이후에 드제(Louise C. Desaix)가 이집트 원정군을 지휘하였지만 나폴레옹이 없는 프랑스군은 1801년, 2년 간에 걸친 전투 끝에 영국과 오스만 제국에게 항복을 한 뒤 15,000명이 프랑스로 귀국했다.

 

 2. 트라팔가 해전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 10. 21)은 유럽대륙을 거의 제패한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남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하여 스페인과 연합하여  영국과 벌인 해전이다. 영국해군 27척이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 33척을 기습 공격하여 연합함대는 22척이 격침되었으나 영국은 1척도 잃지 않고 영국해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해전이다.
 프랑스의 해군력으로는 영국과의 해전에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을 24시간만 상대해 준다면, 영불해협을 건너 15만의 지상군을 영국에 상륙시킬 수 있다고 계산했다. 상륙 이후의 지상전에 대해서는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우기 이때는 나폴레옹의 전성기 시절이어서 후반기 보여주는 판단착오나 실수는 거의 없었다. 반면, 대불동맹군은 프랑스군에게 연전연패하는 중이었다. 이처럼 24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프랑스 해군의 임무였다.
 나폴레옹은 해군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고자 스페인 함대와 연합하여 영국 주력함대를 유인하고 전력을 분산시켜서 프랑스 육군의 수송함대가 무사히 해협을 횡단할 시간을 벌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해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당시의 기술로는 해군이 그런 정확한 타임 테이블을 맞출 수는 없었다. 물론 수적으로 우세한 영국 함대를 분산시킨 후 각개 격파하여 시간을 끈다는 자체는 좋았지만 전열함이라는 전함들의 특성과 바다 기후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은 깃발 신호로 선제포격과 돌격을 시작하면서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진형 한가운데를 돌파, 단종진을 이룬 채로 전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전투 현장에서의 숫적 우위를 확보한 후 각개격파 하고자 했다. 이 전술에 연합함대는 분단되어 전투지휘가 이루어지지 않아 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하지 못한 채 개별 선박 단위로 저항하다 격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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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트라팔가 해전 전개도 http://blue-paper.tistory.com/584(검색일 :2017.7.30.)


 당시 함선들은 장교들과 선원들이 많은 경험을 쌓지 않는 이상 원하는 대로 기동하기가 힘들었고, 해전에서 일단 난전에 돌입하게 되면 당시의 신호체계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따라서 선원들의 숙련도나 장교들의 경험과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난전을 피하고 어떻게든 전열을 구성한 형태로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전투는 난투전 양상이 되었고,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격침되었다.
 전열 돌파 전술은 훈련도와 조직력이 떨어진 함대 상대로는 유효하지만 전열이 제대로 구성된 함대를 상대로는 오히려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으나, 프랑스-스페인 함대는 숫자는 많았지만 프랑스의 육군의 자질이 뛰어났던 것과는 달리 해군의 장교와 선원들은 영국군에 비해 거의 경험을 쌓지 못했으며 질적으로 크게 뒤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Ⅲ. 결론

 역사에 가정을 한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은 없다. 그러나 역사의 결말을 알기에 과정의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 생각은 항상 들게 된다.
 유럽대륙을 거의 정복하고 프랑스대제국을 건설했던 나폴레옹이지만 이집트 원정의 이유가 영국이 미래의 우환이 될 거라고 생각되었던 예방조치였다면, 나일해전의 패배 후 대륙에서 거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체결한 루네빌조약(Peace of Lunéville, 1801.)에 힘입어 영국이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아미앵 조약(Treaty of Amiens, 1802.)으로 휴전이 성립되었을 때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해양력의 건설에 보다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근시안적인 사고로 육군력 건설에만 집중하였다.
 트라팔가 해전은 유럽의 세력 판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나폴레옹은 영국원정군의 방향을 돌려서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전쟁을 하였고, 그의 전략과 기동력으로 대불동맹 연합군을 아우스터리츠 전투(Battle of Austerlitz, 1805.)에서 격파하였으며 전쟁에서 승리 후 유럽대륙을 거의 지배하는 프랑스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영국이 지원했던 유럽대륙내의 대불동맹은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후에도 나폴레옹이 해양력에 더 치중하였다면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패배를 교훈삼아 그가 생각했던 영국 본토에 대한 정복도 가능했을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으면 굳이 영국을 경계하려 했던 대륙봉쇄령도 없었을 것이고 그의 일생의 최대의 패전인 러시아 침공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손자가 강조했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처럼 그가 영국의 의도와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해양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영국의 강점에 제대로 대처하였다면,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제국은 오랜기간 존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강점인 육군력만으로 대륙을 정복한 것으로 만족하였고, 영국에 대하여는 트라팔가 해전 이후에 직접적인 공격계획을 포기하고 대륙봉쇄령이란 가장 악수(惡手)를 두면서 이를 위반한 러시아에 대한 징벌적 침공을 하게 되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엘바섬으로 귀양가고 다시 탈출하여 황제복위를 꿈꾸었지만 영국을 축으로 한 연합군에게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마한(Alfred T. Mahan)은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해양력을 경시하는 바람에 대륙에서의 승전으로 이룩했던 프랑스 대제국을 황제로 즉위한지 11년 만에 몰락의 길로 인도시킨 셈이 되었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그레고리 반즈, 토드 피셔 저· 박근형 역, 『나폴레옹 전쟁』 (서울 : 플래닛 미디어, 2009).
버나드 몽고메리 저・승영조 역, 『전쟁의 역사』 (서울 : 책세상, 2004).
베빈 알렉산더 저· 김형배 역,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서울 : 홍익출판사, 2000.
알프레드 마한 저・김주식 역,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서울 : 책세상, 1999).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엮음, 『세계전쟁사』 (서울: 황금알, 2012).
윌리엄 더건 저· 남경태 역, 『나폴레옹의 직관』 (경기도 : 예지, 2006).
정토웅, 『세계 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서울 : 가람기획, 2011).
제레미 블랙 저・박수철 역, 『역사를 바꾼 위대한 장군들』 (서울 : 21세기북스, 2009).
제프리 우덴 저・김홍래 역, 『워털루 1815』 (서울 : 플래닛미디어, 2007).
펠릭스 마크램 저· 이종길 역, 『나폴레옹 전기』 (경기도 : 길산, 2001).

 

2. 논문


정보연, “전쟁 승·패의 군사적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충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7.

 

 3. 인터넷


 http://blue-paper.tistory.com/584(검색일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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