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움직인 이순신의 ‘진(眞)․진(盡)․진(進)’, 3진 리더십 >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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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호(11월) | 하늘을 움직인 이순신의 ‘진(眞)․진(盡)․진(進)’, 3진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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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종평(이순신 연구가) 작성일17-12-27 16:09 조회2,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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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움직인 이순신의 ‘진(眞)․진(盡)․진(進)’, 3진 리더십

 

박종평(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Ⅰ. 신(神)이 된 인간, 이순신
 
 이순신 시대에 이순신을 사람이 아니라, ‘신(神)’처럼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순신의 멘토였던 류성룡은 《징비록》에 한 일화를 기록했다.

 “통제사(이순신)는 군중에 있을 때면, 밤낮으로 엄하게 경계를 하면서 갑옷을 벗지 않았다. … 달빛이 아주 밝을 때였다. 통제사는 갑옷을 입은 채 북을 베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앉아 좌우를 불러 소주를 가져오게 해 한 잔을 마시고는 여러 장수를 불러, ‘오늘밤은 달이 아주 밝구나. 왜적들은 간사한 음모가 많다. 달이 없을 때면 우리를 당연히 기습했지만, 달이 밝을 때 또한 기습할 듯하다. 경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 (그날 밤, 이순신의 예측처럼 일본군이 기습을 했고,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있었던 이순신의 수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이순신을) 신(神)으로 여겼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전란 극복에 가장 앞장섰던, 문신 관료 류성룡 조차 이순신의 부하장수들의 말을 인용해 이순신의 비범함에 최고의 찬사를 표시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군신(軍神)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거의 없다. 《손자병법》의 손자(孫子)도 ‘군대의 성인(聖人)’이라는 ‘병성(兵聖)’으로 불릴 뿐이다. 《오자병법》의 오자(吳子)는 지휘관으로 76전 64승 12무의 승률을 기록했고, 《손자병법》과 짝을 이뤄 읽히는 《오자병법》을 저술했음에도 손자처럼 병성으로 조차 불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비록 일본인들에 의해 ‘신(神)’으로 불리지만, 이순신의 삶과 비교해 보면, 차원이 다르다.

 정유재란 당시 참전했던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은 훗날 이순신에 대해 “통제사(이순신)는 ‘하늘과 땅을 경영하고 다스릴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위태로운 세상을 구하고 위급한 시절을 이겨낸 위대한 공로가 있었습니다(有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라고 평가했다. 진린에게 이순신은 한편으로는 신(神)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한 인간이었다. 신이 된 인간, 그가 우리와 중국인에 비친 이순신이다.


Ⅱ. 세계의 역사를 바꾼 리더, 탁월한 혁신가

 

 영어권에서 사실상 최초로 이순신에 대한 글을 발표한 사람은 미국 해군 역사가 조지 해거만(George Hagarman)이다. 1967년에 <거북선의 신(Lord of the Turtle Boats)>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이순신으로 인해 일본의 동아시아 정복이 300년 동안 미뤄졌다.”고 이순신이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쳤다.

 그 후 미국 종군기자 출신 작가인 윌리엄 위어(William Weir)는 세상을 바꾼 50명의 군사 지휘관의 한 명으로 이순신을 꼽았다. 50명에는 손자, 알렉산더, 한니발, 진시황, 시저, 칭기즈칸, 나폴레옹, 넬슨, 몰트케, 마오쩌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50명은 어지간한 학식이 있는 세계인이라면 누구라도 알 만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그들 모두 세계 역사를 바꾼 사람들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이순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순신을 주목했고 위대한 영웅의 반열에 이순신을 위치시켰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짐 프리드만(Jim Freedman)은 미국에 이순신의 리더십을 분석해 소개하면서, “우리 서구인은 아시아 사람들 중에서 몽골제국의 칭기즈칸 혹은 몇몇 위대한 스승과 지도자를 알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위대한 바다의 영웅이 이룬 업적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 한국의 다윗(이순신)에게 배워야 할 리더십 교훈이 있다. 그가 어떻게 히데요시의 골리앗 일본 해군을 패배시켰는지 배울 수 있다. 어떻게 이 무명의 바닷가 장수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군의 하나에 대항할 수 있었고, 일본 침략자의 거센 물결을 바꾼 뒤에 6년 동안 전쟁을 계속 이끌어 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그의 삶에서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우리가 계발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순신의 기록을 통해 배울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순신을 “극단적인 시련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고(learn), 적응하고(adapt), 변화(change)시킨 사람”으로 보았다.

 이들 외에도 부분적이지만 이순신을 지극히 높게 평가한 사람들도 많다. NATO 사령관이었던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는 “이순신이라는 아주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전략가이고, 전술가였으며,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더였고, 기계를 제작하는 우수한 재주가 있었다. 당시 아시아의 해군 전술은 화살을 쏘거나 배를 부딪치고 상대방의 배에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고 배에 대포가 실려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어떤 공격에도 버티며 막을 수 있는 배를 창안했다. 배는 빨랐고 움직이면서 작전을 할 수 있었다. 갑판 위에는 거북이 등과 같이 쇠를 덮었다. 불화살과 총탄이 뚫을 수 없으며, 큰 못을 박아 적군이 올라탈 수 없게 해 놓았고, 뱃머리는 적선을 부딪쳐 공격할 수 있도록 튼튼했고, 배의 측면 전체에는 대포를 설치했다. 일본 수군이 용감히 싸워도 쇠로 덮힌 전선을 상대할 수 없었다. 조선군이 바다에서 승리했기에 일본 육군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다시 조선을 침략했지만 바다에서는 또 패배했다.”라고 혁신가이자 발명가인 이순신을 주목했다.

 영국 역사가 아서 코터넬(Arthur Cortterell)은 “이 조선의 장군은 획기적인 전투함 거북선을 손수 고안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그와는 달리 영국산 전함으로 자신의 함대를 꾸몄다.”면서 일본인들이 신(神)으로 여기는 도고 헤이하치로와 이순신의 차이를 지적했다. 이들 외국인들의 눈에 이순신은 위대한 리더, 탁월한 혁신가였다.


Ⅲ. ‘진(眞)⋅진(盡)⋅진(進)’ 3진 리더십

 

 신(神)과 위대한 인간의 두 얼굴을 지닌 이순신의 모습은 1597년 음력 9월 16일에 있었던 명량대첩 전후에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순신이 이끈 13척의 조선 수군이 133척 이상의 일본 수군을 맞아 불가사의한 승리를 만든 이유와 리더십 본질을 필자는 그의 일기와 보고서 등에서 찾아낸 세 글자, ‘참 진(眞), 최선을 다할 진(盡), 나아갈 진(進)’으로 본다. ‘진(眞)⋅진(盡)⋅진(進)’은 이순신의 모든 것이다.

 ‘참 진(眞)’은 절대적인 그 어떤 존재와 같은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자세이다. 삶에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행동이다.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익(公益․共益)과 공심(公心)의 삶이다. ‘최선을 다할 진(盡)’은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를 극복할 때는 물론 평상시의 자세이다. 무엇을 하던, 어느 자리에 있던, 어떤 위기가 닥치던 없는 지혜까지도 끌어내 활용하려는 자세이다. 그러나 결과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다. ‘나아갈 진(進)’은 오뚝이처럼 끊임없이 일어나되, 홀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또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태도이다. 과거에 갇히지 않고 습관의 노예가 되지 않는 지속적인 자기혁명의 실천이다. 프리드만이 말한 학습과 응용, 변화의 과정이다.

 ‘진(眞)⋅진(盡)⋅진(進)’의 ‘3진의 리더십’을 풀어 써 보자면, 시인 윤동주가 노래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참된 마음과 행동(眞)으로, 온 몸과 정성을 다 바치며(盡), 같은 시대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 ‘진(眞)⋅진(盡)⋅진(進)’이 자신의 삶에 녹고 쌓였을 때만이 하늘은, 절대적인 존재는 그의 열망에 응답한다. 흔히 말하는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이다. 
 
 명량대첩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해전이다. 1597년 7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사실상 전멸 당했다. 원균에 이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에게는 죽음의 바다에서 탈출해 온 10 여 척의 판옥선 밖에 없었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마지막 숨통을 끊고 남해와 서해를 거쳐 서울까지 북진하려 했다. 그 길목의 한 곳인 명량에 닻을 내린 이순신의 조선 수군 13척은 열 배가 넘는 133척 이상의 일본군에 맞서 32척을 격파하고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했다.

 군사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은 이순신의 기적과 같은 승리 요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순신의 리더십, 명량의 지형과 물결, 판옥선과 일본의 세끼부네의 차이, 함포의 성능, 첩보전, 해상의병의 활약 등등이다. 그러나 그 모두 편린에 불과할 뿐이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존재가 명량대첩의 시작과 끝이다. 특히 ‘지성감천’은 결정적이다. 명량대첩 전의 일기와 명량대첩 날의 일기는 분명히 보여준다. 하늘까지 움직인 간절함과 하늘마저 감동시킬 수 있도록 매 순간 치열하고 순결하게 살았던 삶이었기 때문이다.


Ⅳ. 기적의 명량대첩

 

 일기에 따르면, 이순신은 음력 7월 15일 처음으로 조선 수군의 패전 소식을 들었다. 16일, “몇 번이나 생각해도 분해서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분해서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18일, 수군 재건을 위해 책상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21일에는 불철주야 뛰어다니다 결국 눈병에 걸렸다. 8월 3일, 통제사 재임명장을 받은 이순신은 다시 수군 재건을 위한 노정을 시작했다. 20일 부터 23일 까지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사불성을 반복할 정도였지만 결전의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첩보부대를 운용하면서 경계를 철저히 했다. 일본군은 8월 28일 1회, 9월 7일 2회, 9월 9일 1회의 기습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경상 우수사 배설이 일본군의 기습에 놀라 도망쳤어도 그는 수군 대열을 지켜냈다. 승리할 수 있는 결전의 장소를 찾던 이순신은 9월 15일 마침내 전라 우수영 앞바다로 진(陣)을 옮기고 명량에서 결전을 준비했다. 16일, 이순신은 마침내 명량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했다. 다음은 명량대첩 날의 일기 부분이다.

● 1597년 음력 9월 16일 [양력 10월 26일]. 맑았다. 이른 아침에 특별히 높은 곳에서 적을 감시하는 군사가 나와서 보고하는 내용에,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명량으로 들어와 진(陣)을 치고 있는 곳으로 바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곧바로 여러 배에 명령을 내려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30여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둘러쌌다. 여러 장수 등은 스스로 적은 수로 많은 적과 싸우는 상황이라고 계산하고 편안히 살고자 회피할 계획이었다. 전라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두 마장(馬場) 밖에 있었다. 나는 노질을 재촉해 앞으로 돌진해, 지자⋅현자와 각종 총통 등을 어지럽게 쏘았다.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듯했다. 군관 등은 배 위에 빽빽이 서서 빗발치듯 화살을 어지럽게 쏘았다. 적의 무리는 맞서 겨룰 수 없었기에 가까이 왔다가 물러갔다가 하면서 몇 겹으로 둘러쌌다. 상황이 앞으로 어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논하며 설명하면서 말하기를, “적선이 비록 많아도 직접 덤비기 어려우니 조금도 불안에 떨지 말라! 더욱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적을 쏘고 적을 쏘아라!”라고 했다. 고개를 돌려 여러 장수의 배를 보았더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었다. ‘배를 돌리라.’고 군령을 내리고 싶었으나 여러 적이 물러나는 틈에 기어오를 수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명령을 내리는 소라를 불게하고, 중군(中軍)에게 명령을 내리는 깃발을 세우게 했고, 또 장수들을 불러 모으도록 초요기를 세우게 했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점차 우리 배로 가까이 왔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했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들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안위가 몹시 당황해 허둥지둥 적선 속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또 김응함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중군인데도 멀리 피해 대장(大將)을 구하지 않는구나. 그 죄를 어찌 벗을 수 있겠느냐? 처형하고 싶으나 적의 상황이 또한 급하니 먼저 공(功)이라도 세워라!” 두 배가 맨 먼저 나갔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2척에게 지시해 한꺼번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붙들고 기면서 다투어 올라갔다. 안위와 배 위의 사람은 각각 죽을 힘을 다해 능장을 들거나, 긴 창을 잡거나, 수마석 덩어리로 끝없이 어지럽게 쳐댔다. 배 위의 사람들의 힘이 거의 다했을 때, 내 배가 뱃머리를 돌려 곧바로 들어갔다. 빗발치듯 화살을 어지럽게 쏘았다. 적선 3척이 거의 다 뒤집어졌다. …… 항복한 왜인 준사란 놈은 곧 안골 적진에서 투항해 온 놈이구나. 내 배에 있었는데, 내려다보다가 말하기를, “무늬가 그려진 붉은 비단 옷을 입은 놈이 곧 안골진 적장 마다시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무상 김돌손으로 하여금 쇠갈고리로 뱃머리로 낚아 올리게 했더니, 준사가 기뻐서 펄쩍펄쩍 뛰면서 말하기를, “이놈이 마다시입니다.”라고 했기에, 곧바로 “마디마디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적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여러 배들은 적이 우리를 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한꺼번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각각 지자와 현자를 쏘았다. 소리가 바다와 산을 흔들었다. 화살을 빗발치듯 쏘았다. 적선 31척을 깨부수었다. 적선은 피해서 물러가 다시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우리 수군은 싸웠던 바다에서 정박하려고 했으나 물살이 아주 위험하고 바람도 거꾸로 불었다.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로 옮겨 정박했다. 밤을 지냈다. 이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도우신 것이구나(此實天幸).

 일기처럼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통제사였지만 맨 앞에서 두려움 없이 싸웠고 승리했다.


Ⅴ. 지성감천(至誠感天)의 기적

 

 ‘진(眞)⋅진(盡)⋅진(進)’의 이순신 리더십이 만든 명량대첩에는 ‘지성감천(至誠感天)’이 있었다. 누가 가짜로 지어낸 것도 그가 지어낸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쓴 그가 실제로 쓴 일기이기에 믿을 수밖에 없다.

 

● 1597년 음력 9월 13일 [양력 10월 23일]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배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꿈에 특별한 것이 있었다. 임진(壬辰, 1592년)에 크게 승리했을 때와 거의 같았다.
 
● 1597년 음력 9월 15일 [양력 10월 25일] 맑았다. ……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陣)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는 명량이 있다. 적은 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쳐서는 안되기 때문이구나.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약속하며 말하기를, “병법에서 말하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고 했다. 또 말하기를, ‘한 명의 사나이일지라도 좁은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의 사나이라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 각각의 여러 장수가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곧바로 군율에 따를 것이다. 조금도 너그러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거듭 엄격하게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있었다. 지시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승리하고, 이렇게 하면 패배 당할 것이다.”라고 했다.

 13일 일기 속의 꿈 이야기와 15일의 신인(神人) 꿈 이야기는 이순신의 뜨겁고 애닮은 열망의 결과이다. 또 기적의 증거이다. 신인이 알려준 전략전술을 활용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적처럼 승리했다. 또 명량대첩 날의 일기 끝에는 “이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도우신 것이구나(此實天幸).”라고 분명히 나온다.
 
 그의 ‘참된 마음(眞), 최선을 다하는 자세(盡), 굴복하지 않고 함께 미래로 나가는 행동(進)’이 마침내 하늘을 감동시키고 움직였다. 이순신처럼 ‘진(眞)⋅진(盡)⋅진(進)’의 마음과 태도, 행동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우리 삶에 맞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참고문헌>

 

 류성룡, 《징비록》. (* 박종평 번역문 사용)
 박종평, 《이순신, 지금 우리가 원하는》, 꿈결, 2017.
 박종평, 《진심진력 : 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 더퀘스트, 2014.
 박종평,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흐름, 2013.
 이순신, 《난중일기》. (* 박종평 번역문 사용)
 Arthur Cortterel, 김수림 옮김, 《아시아 역사-세계의 문명 이야기(Asia-A Concise History-》, 지와 사랑, 2013
 Bernard Law Montgomery, 《A History of Warfare》, World Publishing Company, 1968.
 William Weir, 《50 Military Leaders Who Changed the World》, CareerPrInc, 2007.
 George M. Hagerman, ‘Lord of the Turtle Boats’, 《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Proceedings》 December 1967.
 Jim Freedman, <Leadership Under Fire?>, 《The Morris Institute Weekly Wisdo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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