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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호(11월) | 3. 중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해양영토 분쟁의 역사적 배경 -서사군도, 남사군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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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윤명철(둥국대학교) 작성일17-12-27 16:30 조회3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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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중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해양영토 분쟁의 역사적 배경
    -서사군도, 남사군도 중심으로-
 

   

윤명철(둥국대학교)

 

동아시아에서는 앞글에서 서술한 한일, 한중, 일러 간에 벌어지는 해양토갈등 외에도 소위 남중국해라고 부르는 동남아시아 해양에서도 여러나라들 간에 상호영토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영토갈등은 우리의 물류망 및 자원공급, 그리고 강대해지는 중국의 해양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1) 현재  중·동남아시아 간 해양영토분쟁의 상황

  < 영토분쟁의 배경>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에는 소위 남중국해 필자는  ‘동남아시아 지중해(South east Asian-mediterranean-sea)’ 모델을 모색하고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동남아시아 지중해의 범주는 소위 남중국해와 보르네오해를 포함하며, 인도차이나반도, 대만, 필리핀(루손섬 포함), 인도네시아의 주요 섬들을 포함한다.  
의 영해와 몇 개의 섬들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해양교통로’라는 전략적 가치이다. 남사군도 서사군도는 아시아 국제 항로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믈라카해협, 바시해협, 바린당해협(Balintang Channel), 발라바크해협(Balabac Strait)을 지킬 수 있는 천연적 수륙의 요충지이다. 또한 이곳은 베트남의 캄란만 군사기지와 필리핀의 수빅만 군사기지 중간 사이에 위치하여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있다.  둘째, 지경학적 가치이다. 즉  어업자원적 가치와 지하자원적 가치이다. 풍부한 어장이며 석유와 천연 가스, 철, 구리, 망간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이 다양하게 매장되어 있다. 특히 천연가스 지질 매장량은 350억 톤으로 추정되어 ‘제2 페르시아 만’으로 불리운다.  黃岩島는 주변에 광물자원 어업자원 등 자원들이 풍부하다. 中國水產科學研究院南海水產研究所, 「“南鋒”號完成黃岩島及以西海域, 2014年 第1航次 漁業綜合調查」, 『中國水產』, 2014年 05期, p.15.
말레이시아 정부가 설정한 배타적 경제 수역(EEZ)과 대륙붕 지역은 중국정부가 주장하는 전통영토경계선 이내의 27만 ㎢ 크기의 면적과 중복된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남사군도 부근에서 10개의 상업 유전과 90개의 유정을 설치하여 석유 수출 전체 분량의 70%를 생산한다. 이외에 중국과 브루나이(남사군도 섬(암초)의 분쟁) 및 인도네시아와는 ‘배타적 경제 수역’ 문제 등이 있다. 셋째,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 때문이다. 서사군도의 경우, 외교 전략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필리핀은 황암도에 대해  주권요청을 하였으나, 아직까지 쌍방 모두 군사적인 점령이나 이민이주 정책 등은 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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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동남아시아 범위

<영토분쟁의 현황>

⑴ 西沙 군도의 섬(암초) 분쟁

 西沙군도는 남중국해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중국의 海南島 동남에서 210㎞, 떨어진 곳에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가장 육지가 넓은 군도이며, 총 22개 도서,7개 沙洲, 그 이외 10개의 암초와 암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은 서사군도를 宣德 군도와 永樂 군도로 표기했다. 

⑵ 南沙 군도의 섬(암초) 분쟁

  남사군도는 남중국해의 4대 군도  중에 가장 남쪽에 있으며, 약 230여개의 도서 및 洲, 礁, 沙, 灘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숫자가 많고, 또 넓게 분산된 군도로서  해역 면적은 70만 ㎢이지만 물 위에 드러난 부분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立地暗沙는 중국 해양 영토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섬이다.
  남사군도의 해양은 西쪽에서 南쪽과 東쪽의 순서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과 인접해 있다. 1970년대부터 이 해역을 둘러싸고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및 대만(당국) 즉, 소위 ‘6국 7방(六國 七方)’ 간의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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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중국이 설정한 9단선과 남중국해 판결. 연합뉴스 2016,07,12


① 중국과 베트남의 분쟁


  1988년 3월 14일, 베트남 해군과 중국 어선이 남사군도 근처에서 충돌하자 양국 정부는  군함을 파견하여 군사 도발이 고조되었다. 1989년 3월, 베트남 해군사령관 甲文綱은 베트남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부의 기관 간행물(중국명 『全民國防』)에서 “(베트남) 해상영토는 육지 면적보다 3배나 크다.”며 “베트남은 西沙, 南沙群島의 주권을 소유” 중국 외교부 대변인 발표문, “抗議越南侵犯中國主權”, 人民日報,1989-08-20.
  라는 주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와 동시에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도 마찬가지로 영토를 요구하면서 남중국해역에서 도서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베트남은 현재 남사군도의 28개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북부만의 영해 그리고 白龍尾島 등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1975년에는 통일 베트남이 남사의 섬들을 접수했다. 그러자 중국 해군은 서사군도 부근 해역에서 베트남 군함을 격침한 후에 서사군도를 다시 확보하였다. 베트남과 중국은 1988년 赤瓜(Chigua Island)에서 무장충돌을 벌였다.  

② 중국과 필리핀의 영토분쟁


  필리핀도 중국도 ‘黃岩島(Scarborough Shoa, 또는 民主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섬은 필리핀 루손섬의 서안에서 230㎞,중국의 광조우(廣州)에서 약 1112㎞ 떨어진 섬이다. 주변 수십만 ㎢ 해역 내에서는 수면에 노출된 유일한 바위섬이므로 매우 중요한 해양전략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고리 모양 형태의 ‘環形礁’로서 출입구는 대형 군함이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피항할 수 있는 항구로 사용된다. 
1954년 10월 21일 필리핀 어선이 마닐라를 출항해 남사군도에 위치한 태평도 일대에 도착하였다. 1955년 5월 27일, 선박은 다시 태평도 부근 해역에서 항해한 후에 상륙하였다. 1955년6~7월에는 필리핀의 순찰폭격기가 남사군도 상공에서 선회하여 이곳에 대한 필리핀의 주권의도를 표출하였다. 중국은 내부사정으로 인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필리핀 정부에게 외교 경고하는 선에 그쳤다. 
그런데 1956년에 ‘크러마(Tomas Cloma) 사건’이 발생했다. 크러마는 마닐라 항해학교 교장이며 1948년부터 해양탐험대를 이끌어 남사군도 부근에서 항해탐험활동을 수차례 하였다. 그는 1956년 3월, 40여명 선원을 모아 해양탐험대를 조직한 후 남사군도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남사군도의 9개 주요도서에 상륙하였고, 5월15일에는 남사군도의 33개 섬 등 총 면적 64976 제곱해리를 발견하고 점령했다는 내용을 세계에 발표하였다. 이와 때를 맞춰 필리핀 부통령 겸 외교부장관은 필리핀에 소속된 선박이 남중국해에서 “무소속의 무인도”를 발견했다며, 이곳에 대해 점령할 권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의 행동은 중국과 대만의 반대와 외교항의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후  필리핀은 1970년 8월 23일 섬을 발견하여 ‘Lavarch Island’(중국에서는 ‘馬歡島(마환도)’로 칭하면서 계속해서 섬들을 점령하면서 자국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980년까지 총 8개 도서의 주권을 확보하였고, 中業島(중국명)에는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 이에 대하여 중국 측은 필리핀 당국이 1956년부터 민간 탐험과 정부개입이라는 이중 방식으로 남사군도의 9개 섬을 불법 점유하였다고 1956년에 중국과 필리핀 지간에 소위 ‘크러마(Tomas Cloma) 사건’을 말한다.
 주장했다. 2015년 5월 8일,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인 華春瑩(화춘형)은 필리핀 당국에게 인원과 그동안 설치했던 시설물을 모두 철수하라고 거듭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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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남사군도, 중사군도, 서사군도 해양 분쟁 추세

​  그러자 필리핀 정부는 영유권을 국제사회에 제출하였으며, 다양한 여론 홍보 등을 절차 있게 시작하였다. 동시에 정부가 민간단체들을 지원하여 남사군도 부근 해역에서 탐사활동을 시작하였다.

 

③ 중국과 말레이시아 분쟁


  말레이시아는 1979년 정부가 남사군도의 남부해역을 자국의 영해로 귀속한다고 선포한 후 해군이 총 9개의 섬과 암초를 확보하였으며, 일부 섬에는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였다. 


2) 해양영토 분쟁의 역사적 배경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토갈등은 이러한 복합적인 목적과 현상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 국가들은 이러한 갈등에 유리한 입지와 명분을 만들 목적으로 이와 관련된 역사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역사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1) 중국과 베트남의 역사갈등


대표적인 역사갈등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벌이지고 있다.

 

① 西沙(서사)군도


  서사군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베트남은 군사전쟁과 역사전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 역사전쟁은 현실적인 군사전쟁보다 더 강력하게 보인다. 1974년에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는 ‘西沙 해전’이 발발하였다. 이후 베트남 정부는 2권의 백서를 발표하고 남중국해의 도서들을 자국의 영토로 포함시켰다. 그런데 중국 측은 문화대혁명이 마무리되는 시기였으므로 주로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서사군도의 역사적 근거를 연구하였다. 그 후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기록들의 발굴, 문헌의 고증, 체제와 편년 등 여러 연구영역에서 성과가 컸다.
중국정부는 역사적 명분과 경재에서의 우의를 차지할 목적으로 1970년대-9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이후라는  2단계로 나누어 베트남에 대한 역사 공격을 추진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서사군도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였지만 이 무렵  남중국해에서 거대한 양의 해저광물자원이 발견되면서 해양영토 분쟁을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라서 국제분쟁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없었지만, 대만정부는 베트남과 역사전쟁을 치루기 위해 학계가 적극적으로 연구하였다. 
양 국의 역사 분쟁은 고고학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미 신석기 중· 후기에 華南智人(Home sP)이 百越인(절강성 광동성 북부베트남 지역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으로 진화되었다.(10642±207B.P.) 또한 山海經(산해경, 기원 전에 집필됐다는 지리인문서)에는 서사군도 일대에 사는 사람들을 “단발문신(斷發紋身)”하였고, “習水行舟(믈에 익숙하여 배로 다닌다.)”의 생활을 하던 해양민이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뗏목, 독목주를 타고 먼 남중국해의 섬들로 갔다고 주장하였다. 서사군도의 섬인 감천도(甘泉島)에서 선사시대 유적을 발굴하였는데 돌로 만든 어업도구들도 발견하였다. 그런데 재료인 돌이 그 섬에는 없고 유물들의 제작 기술, 형태 등이 해남도의 여러 곳에서 출토된 신석기 후기부터 전국 시대까지의 것들과 일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섬들에서는 진나라 시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도자기의 파편이나 옛날화폐 등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2000년 이전부터 해남성에서 거주한 해양민들이 서사군도에 정착하여 생활하였다 王恒傑, 「西沙群島的考古調查」, 『考古』, 1992(9), pp.769-777.
는 주장이다.
  그러나 베트남 역사학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댄다. 우선 중국의 지리학자, 선원 및 해양 탐험가 등의 저서를 보면 서사 군도 및 남사군도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있으나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다. 그러므로 언급한 이 섬들이 반드시 서사군도 혹은 남사군도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베트남 남해에 대한 주요관점은 戴可來; 童力, 『越南關於西南沙群島主權歸屬問題文件資料彙編』, 河南人民出版社. 책 내용 참조.
 소위 ‘萬裏長沙(만리장사)’·‘千裏石塘(천리석당)’·‘七州洋(칠대양)’이라는 곳들이 어떤 섬들인지, 현재 명칭은 어떤 섬을 가리키는지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주권이 확인될 수 없으며, 더구나 서사군도란 명칭은 지난 20세기부터 적용이 시작된 것이다.(1935: 南沙群島,1947: 西沙群島)라고 반박했다. 특히 완전한 중국 지도는 1905年에 완성되었는데, 앞부분에서 중국 영토의 가장 남단을 북위 18°13′로 기재하였다. 또한 사서에서도 서사군도를 언급할 때 ‘屬於越南(월남에 속했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즉 베트남에 속해있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의 역사적인 연고권을 두고 양 쪽의 역사해석이 맞서고 있다. 

 

② 南沙군도

 

  중국정부는 남사군도에 대한 역사적인 권리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원 전 221년에 진시황이 전국에 42개 군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 남해군이 서사군도와 남사군도가 그 관할아래에 놓였다. 기원 전 111년에 한나라의 무제가 하이난섬(海南島)에 2개 군을 설립한 후에 수군을 보내서 서사, 남사 근처 섬들을 순시하였다. 이어 삼국시대를 거쳐 당나라 때까지도 이러한 기록들이 있다. 즉 『구당서· 지리지』의 기록에는  振州(현재 해남도) 강역은 ‘西南至大海千裏(서남쪽으로 큰바다 천리에 닿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서사군도를 포함하였던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이후 청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들이 이 해역을 설명하였는데, 어떤 책에는 해남도의 어민들이 자주 쓰던 남사군도와 그 주변의 섬, 암초 등의 지명과 방위까지 기록되었다고 제시한다. 물론 이에 대해 베트남 학자들은 다음처럼 반박한다. 즉 정부에서 펴낸, 즉 19세기에 베트남을 통치했던 완(阮)왕조가 편저한 『大南實錄前編(대남실록전편)』, 『大南實錄正編(대남실록정편)』,『大南輿地志約編(대남여지약편)』, 『皇越地輿誌(황성지여지)』 등에는 베트남의 어민, 선박, 탐험가 등이 서사군도와 남사군도에서 항해활동과 어업활동을 한 것들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 중국과 필리핀 간에 黃岩島를 중심으로 벌어진 영토갈등은 1950년대부터~70년대  크레머 사건 이후이므로 역사해석과 연관해서는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크레머 선장이 항해탐험을 통해 남사군도 부근의 해역에 대해 대량의 정보와 항해지형 자료를 입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해양 데이터베이스는 필리핀이 남사군도를 점령하는 데에 유리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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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大南一統全圖

(1834, 越南阮朝繪制的地圖) 파라셀군도(서사군도)가 베트남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

​결    어

현재 동아시아는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내부의 협력과 공존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과 충돌이 확산되고 있다. 역사갈등, 경제갈등, 문화갈등, 정치갈등, 심지어는 동아시아 세계의 치명적인 균열을 야기시킬 영토갈등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영토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세계질서의 재편과 서구 세력의 동아시아 침투과정에서 발생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각 국가들은 갈등에서 유리한 명분을 만들고,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역사해석 작업을 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역사갈등으로 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海疆史 硏究, 일본의 역사왜곡과 우익적 성향의 교과서 채택, 러시아의 역사연구, 베트남의 역사서술 등은 그러한 예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해양영토 갈등의 본질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역사적인 배경을 아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이 글은 필자가 연구책임자로 집필한  『현 동아시아 해양 국경분쟁의 역사적 근거 연구와 대안 탐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 총서 2016-23. 를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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