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 시의 지휘통솔 > E-저널 2017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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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호(12월) |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 시의 지휘통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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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임익순(육군 리더십센터) 작성일18-01-10 23:27 조회3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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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 시의 지휘통솔

 

임  익  순(육군 리더십센터)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 이 두 해전은 1597년 7월과 9월의 두 달 사이에 남쪽 해안의 동측단과 서측단에서 조선과 왜의 수군이 정반대의 입장에서 전개한, 특이한 상황이 반영된 전투이다. 칠천량해전은 조선 수군이 왜의 수군을 추격하면서 부산포 방향으로 동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투이며, 명량해전은 반대로 왜 수군이 조선의 수군을 추적하여 서진을 통해 서해로 진출하기 위해 전개한 전투이다. 전투에 임한 장수의 지휘통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투가 바로 이 두 해전,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이다. 우리는 이 두 전투의 비교를 통해 지휘관의 지휘통솔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두 해전의 비교를 통해 지휘관의 잘못된 부대지휘와 부하들에 대한 통솔이 360여 척에 이르는 대 함대를 일거에 궤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지휘관의 탁월한 지휘통솔은 절대적으로 열세한 부대로 하여금 10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싸워도 승리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다. 

  원균과 이순신이 수행한 이 두 해전은 여러 면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전투의 결과가 패배냐 승리냐를 떠나 전투에 돌입하는 과정과 결정적인 전투가 전개된 경과 등에서 사전에 작성된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하도록 한 것처럼 너무나도 명확하게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한 전투이기도 하여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같은 해전을 두고도 연구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실패 또는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연구자들의 관점과 해전의 결과 분석의 상이한 점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민웅은 두 해전을 각각 분석하였다. 이민웅은 칠천량해전의 패배 원인을 지휘체계 상의 문제와 함대세력의 도망, 원균의 통솔력 부족을 들었다. 특히 원균의 통솔력 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습격을 받은 이후 해전에서 함대를 통솔하지 못한 점과 함대 세력을 온존시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 장병들이 지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경계를 게을리 하도록 방치한 점 등을 들었다. 

[이민웅,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2. pp.227〜228.]

 반면, 명량해전의 승리요인에 대해서는 이순신이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강력한 함대를 구성한데 비해 왜군은 명량의 협수로 때문에 세키부네 만이 참전한 것을 첫째 요인으로 들고 있다. 둘째는 명량의 지형지물과 조류를 이용한 해로차단 전술을 채택한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전술을 들었으며, 셋째로 해상 의병과 인근 피난선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전투참여 때문이었다고 분석하였다.

  한편 이종학은 각각 발표된 논문에서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의 패인과 승인을 분석하였다. 먼저 칠천량해전의 패인에 대해서 손무의 칠계인 정치, 장수, 천시와 지리, 조직‧규율‧병참의 정비, 병력의 규모 훈련 정도, 상벌의 공정성의 기준에 의거하여 분석‧평가하였다. 이에 따르면 정치면에서 선조의 잘못된 판단과 조정의 수군에 대한 지휘체계 정립이 실패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수면에서는 원균이 수군통제사로서 지휘통솔력이 전혀 없었고 정보의 이용 등 전쟁원칙과 작전계획을 구상할 능력도 갖추지 못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천시와 지리의 측면에서도 지형과 기상이 모두 불리한 상태였으며, 조직‧규율‧병참의 정비 면에서도 이순신에게서 인계받은 장비와 물자도 제대로 정비하여 활용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종학, “칠천량해전의 군사사학적 연구”,『군사평론』404호, 2010, pp.264〜289.]

 명량해전의 승인에 대한 분석에서는 칠천량해전의 패인분석에 적용하였던 손무의 칠계와 클라우제비츠의 5개 전승요소인 정신적‧물리적‧수학적‧지리적‧통계적 요소 등을 참고하여 해전방식의 변천, 군수, 병선의 성능과 무장, 지휘관의 자질과 능력 등 4개 분야에서 분석하였다. 해전방식의 변천 면에서는 이순신이 왜군의 장기(長技)인 등선백병전술을 구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적선에 접근하되 너무 밀착하지 않고 활이나 화포의 사격에 의한 장거리 전투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승리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군수 면에서는 이순신의 인근 주민들을 이용한 군량과 의복 등을 보급하는 등의 노력에 의해 해소한 것이 장병들의 사기를 앙양하는 효과를 나타내어 승리하였다고 하였다. 병선의 성능과 무장 면에서는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병선의 성능과 화포를 이용한 전술로 승리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지휘관의 자질과 능력 면에서는 지휘관의 중요성을 분석한 뒤 지휘통솔력, 정보에 대한 관심, 전쟁원칙과 건전한 전략에 의한 작전계획 수립 능력이 탁월한 이순신이 진두지휘, 정보 분석과 이용, 건전한 군사이론에 의한 용병술로 승리하였다고 분석하였다. [이종학, “명량해전의 군사사학적 연구”,『해양전략』123호, 2006. pp.13〜28.]

  이와 같이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을 분석하는 방법과 요소는 여러 연구자의 관점에서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여러 연구자들의 관점과 손무·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들을 참고하여 분석요소를 식별하였다. 여기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의 전체국면을 조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전투의 승패에 관련된 요인에 대한 분석이므로 전투의 경과에서 나타난 중요한 요소를 고려하여 분석요소를 찾아보았다. 따라서 분석하고자 하는 승패의 요소를 전투의 준비과정, 장병들의 전투의지 고양 측면, 부하와의 화합 측면, 지형지물의 이용 측면, 전술적 대응 측면, 경계와 정보의 이용, 그리고 지휘관의 태도 등 전술운용을 포함하는 지휘통솔 측면의 일곱 가지 요소로 식별하고 이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칠천량해전과 명량해전의 지휘통솔 비교

(이 표는 분석하고자 하는 두 해전의 경과로부터 승패의 요인이 되는 지휘*통솔 및 전술적 운용에 대해 필자가 분석하여 정리한 것) 

구분

칠천량해전(원균) 

명량해전(이순신) 

전투준비

* 강력한 수군전력 유지(320여 척) 

* 장벌을 받고 억지로 전장에 투입

* 작전계획 미수립

* 열세한 수군수습9전선 13척 등 45척) 

* 전투예측, 해전장소 결정

* 일자진에 대한 계획 수립

부하와 화합 

* 부하 장수들이 다른 마음을 먹음 

* 군령확립, 사기앙양 

전투의지

* 전혀 없음, 순국뿐임(죽음만 있음)

* 필패의 자괴감 

* 전투의지 고양, 필사즉생(살 수 있슴)

* 필승의 자신감 

지형지물 이용 

* 이동로 상 적 매복지점 미예측

* 절영도 외해 파도 미예측 

*명량의 협수로 이용

* 조류의 변화 방향과 시간 이용 

전술적 대응 

* 야간기습에 대응 실패

* 왜군 장기인 등선백병전술 허용 

* 야간기습 예측 및 격퇴

* 등선백병전술 불허 

경계와 정보이용 

* 칠천량 묘박 시 경계병 미운용

* 가덕도 상륙 시 수색 미실시

* 정보이용 전무 

* 정탐선 운용, 왜군동향 미리파악

* 철저한 경계병 운용

*수색/정탐결과, 민간제공 정보이용 

지휘관의 태도 

* 전장회피, 상륙 후 참살당함

* 통제능력 상실, 참패 수군 궤멸 

* 최선봉에서 대장선 홀로 독전

* 부하 독려 승적으로 이끎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균과 이순신의 지휘통솔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본질적인 차이는 앞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의 분석요소에 따라 나타나며 각각의 요소에 대해 특징적인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결정적인 전투에 투입되기 전의 전투준비에 관한 것이다. 원균은 육군이 먼저 안골포와 가덕도의 적을 먼저 공격하여 격퇴시켜야만 해전에 임해 왜의 수군을 격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도원수나 조정의 의견과 대립하였다. 그러다가 도원수 권율로부터 곤장을 맞고 화가 난 상태에서 억지로 전 함대를 지휘하여 부산 앞바다로 향함으로써 전투에 투입되었다. 조선 수군의 최고 지휘관인 통제사가 장벌을 받았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지만 병법서에 장수는 성난다고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계획을 수립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었다.

  반면, 이순신은 잔여수군을 수습하여 열세한 세력이지만 전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해전을 전개할 장소를 명량해협을 건너가 험한 길목을 지킬 수 있는 장소로 결정하는 등 전투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둘째는 부하와의 화합에 대한 내용이다. 원균은 부하와의 화합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원균이 군졸들을 잘 돌보지 않고 부하들과 잘 화합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이순신과 교체하여 통제사로 임명하기 전 조정의 어전회의에서 이원익, 유성룡, 이정형 등이 평가한바 있다. 이러한 평가는 통제사로 임명된 이후에 권율에까지 이어지는데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인용한 1597년 6월 권율의 장계에 원균 휘하의 여러 장수들이 대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2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인품과 군사적인 식견, 뛰어난 예측력 등을 바탕으로 휘하의 장수들과 화합하여 스스로 따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휘체계도 확립하였던 것이다. 

  세 번째는 전투의지에 관한 문제이다. 전투의지는 자발성에 기초하지만 엄정한 부대의 기강확립을 통해서도 표출된다. 특히 부하들의 전투의지는 지휘관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균의 전투의지가 어땠는지 대단히 중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균은 이미 권율로부터 장벌을 받고 마지못해 전투에 투입되었으니 전투의지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원균의 태도는 즉각 부하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원균은 칠천량해전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오늘의 전투계획은 오직 일심으로 순국할 따름이다.”라고 했다고 하니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필패의 자괴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칠천량에서 전투에 투입되기 훨씬 전인 이순신이 투옥되어 있을 때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이순신에게 편지를 보내 그 당시의 통제영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수군은 오래지 않아 패할 것이오. 우리들은 어디 가서 죽을지 모르겠소.”라고 함으로써 이미 원균 휘하의 부하들이 필패의 자괴감을 보였던 것이다.

  한편, 이순신은 험한 수로의 길목을 지키면 한사람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수 있다고 하여 필승의 자신감과 강렬한 전투의지를 고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로는 지형지물의 이용이다. 원균이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적을 육군이 먼저 공격해 주기를 바랐다는 것은 그곳에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아군의 이동상황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면서 밝은 대낮에 이동하였고 가덕도에 상륙하면서 수색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400여 명의 병력 손실을 초래했던 것이다. 또한 부산 앞바다로 기동한 첫 날에도 절영도 외해의 파도와 수령(水嶺: 물마루)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적의 적을 추격하다가 유인전술에 말리고 함대의 일부가 표류하도록 만든 것은 지형지물의 이용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철저하게 계산된 기동으로 전투가 전개되기 하루 전에 진영의 위치가 노출된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진영을 이동시키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명량의 험한 수로를 가로막아 지형을 이용하여 적을 격멸할 치밀한 구상을 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조류의 변화 방향과 시간까지 계산에 넣고 필사적으로 저지하다가 유리한 조류로 바뀌자 전 함대 세력을 집중하여 적을 격퇴시키는 주도면밀한 작전을 구사하였다. 

  다섯째 요소는 전술적 대응이다. 원균은 풍랑을 무릅쓰고 영등포에서 칠천량으로 진영을 옮긴 7월 15일 야간에 경계병을 세우지 않아 왜 수군의 접근을 알지도 못했고, 16일 새벽의 야간 기습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기습을 당한 다음에도 일부의 함대라도 우회시켜 왜군의 장기인 등선백병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포를 이용한 공격을 시도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여 참패하고 말았다.

  반면, 이순신은 철저한 경계와 야간 기습에 대비함으로써 적을 격퇴시켰다. 또한 명량해전 당일에도 철저하게 화포와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으로 적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왜군으로 하여금 등선백병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적선을 격파함으로써 승기를 잡고 승리하였던 것이다.

  여섯 번째 요소는 경계와 정보의 이용이다. 원균은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적에 관한 정보를 이용한 흔적이 없다. 왜적의 함선 수가 많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적에 대한 정보도 없이 전투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항상 먼저 왜군의 이동상황을 파악하려고 수시로 해상과 육상으로 정탐을 보냈다. 해전 2일 전인 9월 14일에는 왜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백성의 정보를 이용하여 전투가 곧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피난민을 뭍으로 대피시켰던 것이다. 

  일곱 번째 요소는 지휘관의 태도이다. 지휘관이 전장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지휘관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 위치하여 전투를 지휘할 때 부하들은 지휘관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필사의 각오로 싸우는 것이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조선 수군 최고의 지휘관으로서 과연 올바른 태도를 보였는가? 그렇지 않았다.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들어 부하와 함께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의 전선만을 지휘하여 육지에 상륙하여 전장을 회피하였다. 지휘관이 없는 부대는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적장의 목을 베어 높이 걸면 저절로 사기가 꺾이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휘관이 스스로 전투현장에서 도망 간 것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이순신은 10대 1의 지극히 열세한 함대를 이끌면서도 초전에 대장선이 홀로 상당한 시간 동안을 저지함으로써 부하들을 독려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고 이때 부하들을 불러 전투를 독려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휘관은 누구인가? 지휘관은 평시의 전투준비를 통해 실전에서 자신의 지휘통솔을 통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며, 전투의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지휘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너무 진부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휘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전투를 회피하려는 지휘관의 태도를 보고 뒤따르려는 부하가 있을 것인가? 전투현장에서 부하와 함께하지 않으려는 지휘관을 누가 존경할 것인가? 전투는 지휘관 혼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전투의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휘관은 전투에 임하는 스스로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내면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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