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호(1-3월) | 인도·태평양(Indo-Pacific) 시대 개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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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송승종(대전대학교 교수) 작성일18-03-08 09:33 조회3,439회 댓글0건본문
인도·태평양(Indo-Pacific) 시대 개막의 의미
송 승 중(대전대학교 교수)
Ⅰ. 서론
작년 11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APEC, 필리핀)을 계기로 “인도·태평양(Indo-Pacific)”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에 보통명사처럼 관행적으로 구사했던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순방을 출발하기 직전인 2017년 10월 18일,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미 국무장관은 미국·인도 관계에 대하여 행한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를 무려 15차례 차례나 언급했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통령 순방의 목표 중 하나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의 구축을 꼽으면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 지도자들과 43회에 걸쳐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의 첫 번째 방문지인 일본의 도쿄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에 걸쳐 평화와 안정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다. 베트남에 도착한 뒤에도 “인도·태평양”의 중심에 오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다낭에서 열린 APEC에 참석해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동 비전을 강조했다. 순방의 막바지에 필리핀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우방국 및 동맹국들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작년 12월에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는 “지역별 전략(The Strategy in a Regional Context)” 제목의 장(Chapter)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기술했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개념과 등장배경을 검토하고, 이것이 미국-인도-호주-일본-중국 등 주요 관련국들에 미치는 전략적 함의를 분석하며, 새로이 개막된 인도·태평양 시대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정책적 진로를 짚어보는 것이다.
Ⅱ. ‘인도·태평양’의 개념과 등장 배경
인도·태평양 지역의 개념은 2007년, 당시 인도 해군 대령이던 쿠라나(Gurpreet S. Khurana)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논문은 인도양 지역(Indian Ocean Region: IOR) 일대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해군력 증강이 지역 불안정과 해상 분쟁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의 가능성을 높여줌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도·태평양”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지역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관리하고, 중국을 IOR에서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국제규범 속으로 통합시키는데 필수적”이라 주장하며, 태평양-인도양은 21세기 주요 강대국들에게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표 1> ‘인도·태평양’ 지역
(출처: https://www.coral-reef-info.com/Indo-Pacific-coral-reefs.html)
어떤 면에서 보면, 지경학과 해양의 영역에는 불가분의 연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아시아의 “해양 복부(maritime underbelly)”로 불리는 인도·태평양이 단일의 통합된 지정학적 구성체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야만 그 속에 아시아뿐 아니라 더 넓은 세계에 주어지는 엄청난 지경학적 기회와 더불어 심각한 안보적 도전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도·태평양 개념의 또 다른 본질적 토대가 갈수록 부각되는 인도의 존재라는 점이다. 일견, ‘인도·태평양’과 ‘아시아·태평양’은 단순한 표현방법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도를 그려보면 후자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돋보이던 중국의 영향력이 전자에서는 대폭 ‘희석’되는 것을 알 수 있다(<표 1> 참조).
본질적으로 ‘인도·태평양’ 개념의 부상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이 북한핵에 대한 중국의 역할 및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고도화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비판적 평가에서 비롯되었다. 신개념의 중심축은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4국(Quad) 연합전선이다. 새로운 전략공간으로 자리매김될 인도·태평양 지역에 ‘편입’된 인도양은 지경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유럽-중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로이며 에너지 생명선인 3대 해협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진입로인 바벨만데브 해협(Babel Mandeb Straight), 세계석유 생산의 4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Hormuz Straight), 인도양~남중국해를 이어주는 말라카 해협(Malacca Straight)이 인도양에 있다. 인도양-태평양을 별개의 해양이 아닌 단일의 전략체계로 인식하는 이 새로운 지정학적 신조어의 중심에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겨냥한 대항균형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셈법, 역내의 중요한 이해당사국인 호주-일본-중국 등의 이해득실이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Ⅱ. 주요 관련국들에 대한 전략적 함의
1. 미국
미국이 공개한 2017 NSS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인도 서부해안에서 미국의 서부해안에 이르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 활력이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기술했다. 사실 인도·태평양 개념을 처음 언급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010년 하와이 연설에서 “인도-태평양 분지(Indo-Pacific basic)”를, 그리고 2011년 Foreign Policy 기고문에 미국은 호주와의 동맹을 “인도·태평양”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전인 2007년 발간된 『21세기 미국의 해양전략』도 미 해군의 전투력이 “서태평양과 아라비아 걸프만 및 인도양”을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정학적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냉전시기의 미 태평양 사령부이다. 1960년대 말 영국 군대가 수에즈 운하 동쪽에서 철수하자, 소련이 인도양 지역에 군사적 주둔 및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대한 점증하는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1972년 태평양-인도양을 작전지역에 포함시킨 미 태평양 사령부가 탄생했다. 1970년대 이후, 미 태평양사령부는 2개의 대양을 통합된 전략전구(strategic theater)로 간주하고, 지금까지 이를 “인도-아시아-태평양” 전구로 부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은 (1) 서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지역으로 확대되는 중국의 정치·군사적 활동, (2) 인도를 범지역적 안보 아키텍처에 포함시켜야 할 당위성 등 2가지로 요약된다. 인도를 이 지역의 “순(純)안보제공자(net security provider)”로 지칭하려는 미국의 욕구가 이를 입증한다. 2009년 샹그리라 대화에서 당시 게이츠 국방장관은 “인도가 인도양과 그 이상을 넘어 안보 동반자이자 순안보제공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을 인도양·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인도-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개념의 명목상 지향점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다. 하지만 숨겨진 목표는 중국이 확실히 지배하고 있는 아·태지역을 확대하여, 인도를 포함하는 보다 균형된 범지역적(pan-regional) 개념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태평양 개념의 콘텐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같은 다자적 교역 아키텍처를 붕괴시키면서 신개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협력이 얼마나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응집력과 수렴성(convergence)을 보일 것이냐의 문제이다.
2. 인도
오랜 세월,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어휘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인도에게 “인도-태평양”이라는 신조어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2009년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했던 당시 프라카시(Arun Prakash) 인도 해군 참모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태라는 용어의 기원은 잘 모르지만, 이것이 이 지역에 미국을 포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생각된다....나는 인도사람으로서 아·태라는 용어를 들을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는 동북아, 동남아, 태평양 군도 등등을 포함시키지만 말레카 해협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말레카 해협의 서쪽으로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다...아시아·태평양, 아시아, 인도양 지역이라는 용어들 사이에 모순이 있지 않는가?
인도가 “인도·태평양” 개념에 포함된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개념은 인도가 합류할 때에만 전략적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미국의 아·태지역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는 태평양에 편향되어 있다. 반면, 인도는 거대한 인도양을 앞마당에 두고 있으며, 서남아에서 제1의 강대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국력투사가 한계점에 도달하는 인도양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인도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모방하여, 2014년 인도는 대외정책을 “동향(東向, Look East)”에서 “동행(東行, Act East)”으로 전환했음을 선언했다. 아마도 이는 2011년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이 했던 “우리는 인도에게 동쪽을 바라보지만 말고, 동쪽에 관여하고, 동쪽에서 행동할 것을 장려한다(We encourage India not just to look east, but to engage East and act East as well).”는 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가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이상 추진했던 ‘동향’ 정책에서 탈피한 것은 남아시아에 국한되었던 인도의 대외적 행보가 그 외연을 대폭 확장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인도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공동 전략 비전(Joint Strategic Vision)”을 채택하고, “아프리카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평화·안정 및 번영을 위한 양국 간의 동반자관계를 선언했다.
동진정책에서 경제적 실리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인도 정부의 관점에서, 지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규범에 대한 위협—특히 중국의 위압적/공세적 해군활동으로 인한—은 인도의 국익에 심대한 우려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인도의 사활적 이익은 개방적·비차별적 교역제도, 투자의 장벽 낮추기, 사람과 지식의 자유로운 이동, 법치의 중요성 등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향후 인도는 국익에 부합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개념의 구현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비록 중국을 명시적인 위협국/적대국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인도는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가 중국의 ‘Belt/Road’로 변모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도의 국익은 지역 경제의 내부적·외부적 연결성(connectivity)의 개선에 있다. 이런 면에서 일대일로는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접근성·연결성에 대한 차별적 규칙을 생성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인도는 “一帶一路”가 아니라, 역사를 통틀어 지배적 역할을 수행한 무역 패턴을 반영한 “多帶多路(Many Belts, Many Road)”를 선호한다. 요컨대, 미국이 구상한 인도·태평양 개념과 인도의 국익을 연결해 주는 접착제(the glue)는 부상하는 중국의 역내에서의 고압적·위협적 행보이다. 따라서 인도가 새로운 개념에 편승한 것은 새로운 “東行”정책과 더불어 지전략적 공간을 확장하고, 지경제적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명실공히 역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모디 수상의 “초지역적(trans-regional)”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3. 호주
호주는 “인도·태평양” 개념의 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아울러 신조어의 범세계적 확산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이유는 인도양-태평양을 연결시켜 놓으면 호주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림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호주는 “동인도양-남중국해-서태평양”을 연결하는 연속체(continuum)를 단일의 지정학적 실체로 규정하고, 이를 갈수록 영향력 있는 지정학적 프레임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신조어에 열의를 보이는 단적인 사례로, 호주는 2013년 1월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인도·태평양” 개념을 공식화하였다.
호주 국가안보전략서에 의하면, “‘인도·태평양’ 용어는 아시아·태평양 용어를 보완한다. 즉, 양자는 모두 호주의 국가안보 이익을 바라보는 유용한 준거틀”이다. 이는 인도·태평양 용어가 지리적 준거틀에서 지정학적 준거틀로 진화되었고, 이에 따라 이것이 새로 부상하는 심대한 지정학적 현실을 지칭하는 “인식도(a mental map)”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호주의 입장에서, 인도·태평양은 아시아·태평양이 제공하지 못하는 2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는 지리적 차원에서 인도양을 포함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국가적 차원에서 인도를 포괄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인도·태평양은 인도-호주-미국의 3국간 연계를 반영 및 촉진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호주는 이 개념에서 불편한 모순점을 갖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러한 불편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호주는 불편한 심경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보다 넓은 지전략적 동학(dynamism)의 한복판에 놓이는 신세가 되었다. 호주는 각각 호주의 안보와 경제적 복지에 사활적 중요성을 가지는 미국과 중국의 양대 주요 행위자들 간의 균형을 추구해 왔는데 말이다.” 여기서 이론상 인도·태평양은 중국의 봉쇄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지정학적 용어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호주인들이 그런 용어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인도·태평양에서 항행의 자유는 호주의 사활적 국익에 속하는 사항이다. 또한 호주는 인도·태평양 개념을 통해 동남아 국가 및 인도와의 경제 및 안보 동반자관계 심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는 호주에게 향후 중국과 심지어 미국을 상대함에 있어 더 큰 전략적 행동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4. 일본
일본도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7년 8월 케냐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했다. 이 전략은 태평양~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인프라 구축, 교역 및 투자, 해양안보 협력 등을 추진하자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맞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특히 일본은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국을 중심으로, 항행의 자유, 법치, 공정·호혜적 무역의 실현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2012년에 일본은 인도·태평양에서 “호주·인도·일본 및 미국 하와이를 연결하는 ‘안전보장 다이아몬드’ 형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근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강화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대외정책을 상징하는 “자유와 번영의 호(弧)(Arc of freedom and Prosperity)”라는 개념을 2007년에 제시하기도 했다. 같은 해, 아베 수상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합류(Confluence of the Indian and Pacific Oceans)”를 거론하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과 인도가 “뜻을 같이하는(line-minded)” 해양 민주국가로서 “보다 넓은 아시아(broader Asia)”의 자유와 번영을 촉진해야 함을 역설했다. “더 넓은 아시아”가 미국-호주 및 다른 태평양 국가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사람, 상품, 자본 및 지식의 자유로운 유통이 허용되는 방대한 네트워크로 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상기의 새로운 정책과 구상들은 일본이 21세기 들어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전략적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일본이 이 개념에 열의를 보이는 것은 일대일로 구상에 따라 유라시아~아프리카에서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과 존재감에 지정학적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 중에서 해양안보와 법치(법의 질서)는 통합된 해양전구(maritime theater)로서의 인도·태평양을 대상으로 일본이 수립한 새로운 전략 중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5. 중국
인도·태평양 개념에 대하여 중국은 떨떠름하고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맞춰 중국 관영매체들은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답습하지만, 아·태 재균형 전략은 “중국의 굴기를 막지 못했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 견제가 과하면 견제자(미국)가 중국보다 더 괴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궁극적 목표를 대중국 봉쇄로 간주한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인도·태평양 개념은 “인도양에 미국을 포함시키고, 인도양에서 인도를 고양시키고, 인도양으로부터 중국을 축출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중국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자국을 겨냥한 “봉쇄 음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2013년에도 신임 총리로 임명된 리커창이 최초의 해외방문국으로 인도를 택하여, 인도 총리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위협이 아니고 서로에 대한 봉쇄를 추구하지 않는다(we are not a threat to each other, nor do we seek to contain each other).”고 다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부상이 지역내 지전략적 균형을 바꿔놓고 있다는 점이다. 막강한 경제력·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고압적 대외정책은 역내 지경제학 및 지정학에 격렬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역내 국가들의 경제분야에서 이득(특히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를 포함)을 가져다 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군사력 현대화에 대한 지출 증가와 더불어, 특히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일대에서 국력투사 행위는 미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에게 중대한 우려의 대상이다. 중국의 민족주의(또는 국수주의) 성향의 지도부와 공세적 국익추구 행위는 역내 분란의 진원지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급격한 지역적 유동성과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역내/역외 국가들은 새로운 지역적 차원의 경제 및 안보 아키텍처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상기의 전략적 유동성 및 불안정성·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IV. 결론: 우리의 선택은?
작년 11월 8일, 한·미 정상회담 후에 발표된 공동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신뢰와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 등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 동맹이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축임을 강조하였다.” 공동언론 발표문에는 우리측 입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이후에도 이 용어를 둘러싼 잡음이 노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의 일반적 시각은 인도·태평양이 “피아”를 구분하려는 지정학적 용어로서, 중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일대일로는 견제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중 간 경쟁의 무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넘어, 인도양과 아프리카까지 포괄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인도·태평양라는 신조어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국가는 중국이다. 일대일로 같이 과도하게 야심적이고 거칠고 공격적인 구상과 인접국들에 대한 고압적 행보가 ‘중국의 부상과 위협’이라는 공동의 인식을 공유한 역내 국가들의 연합전선을 예고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용어의 탄생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역사적으로 공동의 위협은 언제나 새로운 국가들의 연합, 연맹 또는 동맹의 출현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새로운 지정학적 무대의 등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기한다.
먼저 기회요인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인 동시에 무역·투자의 중심지로서, 세계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인도의 거대 시장과 ASEAN이 교역대상으로 파트너로 급부상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인도와 이미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했고, 문재인 정부도 한국-ASEAN 관계를 주변 4국의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인도·태평양 개념에서 비롯되는 기회요인은 우리의 미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큰 도전요인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기둥으로 삼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중심축으로 인해, 한·미동맹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뜩이나 북핵위기를 기화로 한·미동맹을 미국의 아시아 동맹체제에서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의 ‘한국 때리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중국 간에 택일을 강요받는 것으로 인식할 경우, 한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요컨대, 한·미동맹의 미래비전과 인도·태평양이 우리에게 주는 전략적 함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새로운 인도·태평양 개념의 출현은 기존의 동맹체제가 유효성과 적실성을 잃고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이나 “헤징 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진로에 더 큰 장애를 조성할 수 있다. 안보상황의 격변 속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운신의 공간을 별로 넓지 않아 보인다. 만일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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