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4-5월) | 동아시아 해양안보와 국제해양법 :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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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민효(해군사관학교 교수) 작성일18-06-25 10:11 조회3,25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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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안보와 국제해양법 :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이민효
해군사관학교 교수
Ⅰ. 서론
오늘날 동아시아 해양(한반도 주변의 동해와 서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및 오호츠크해 그리고 그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서태평양 등의 해역을 포함)은 그 어느 곳보다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은 해역으로써, 역내 각국들은 해양에서의 관할권 강화를 위한 영유권 확대를 꾀하고 있고, 이를 힘으로 뒷받침하고자 강하고 현대화된 해군력과 해양경찰력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동아시아 해양분쟁은 크게 도서 및 해양지형의 영유권과 해양경계획정 분쟁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한일 간의 독도, 중일 간의 센카쿠(조어도), 러일 간의 북방 4개 도서, 남중국해 해양지형에 대한 주변국들의 영유권 주장 등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한·중, 한·일, 중·일, 한·중·일 간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경계획정 및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의 구단선의 법적 지위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이 중에서 후자는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이하 해양법협약) 체결 이후 자국의 해양관할권을 확대하려는 분쟁당사국들의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협약 해석 및 주장 등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을 내재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기인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지역 및 해양질서 형성에 대한 구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집약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후 처리를 위해 일본과 연합국들 간에 1951년 9월 한국전쟁 중 체결된 이 조약은 일본과 관련된 영토적 귀속문제로 인해 주변국들과 영토분쟁을 낳은 주요 근원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조약을 주도한 미국이 일본에 대한 배려와 중국에 대한 견제에 치중한데 기인한다. 강화조약의 이러한 일본 편향적인 경향은 1947년 이후 냉전체제의 심화에 따라 일본을 동아시아의 주요 (반공)동맹국가로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조약 체결 이후 형성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질서형성 및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확인함과 동시에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역내의 변화를 저지하는 기능을 해왔으며 조약의 그러한 기능과 그에 따른 미국의 영향력은 탈냉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기인하고 있으며, 동 조약은 영토분쟁의 해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해양분쟁을 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양법협약은 이 지역에서의 해양분쟁 해결에 의미있는 국제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한계(제한)를 노출하였는가?
본 소고는 동아시아(남중국해 중심으로) 해양안보에 있어서의 국제해양법의 역할과 한계를 검토함이 그 주요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남중국해 해양안보 환경과 해양법협약의 발전과정을 살펴본 후 양자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사례검토를 통해 국제해양법의 역할과 한계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검토사례로는 2016년 필리핀과 중국간 남중국해를 둘러싼 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을 다룰 것이다.
Ⅱ. 동아시아(남중국해) 해양안보 환경
1. 남중국해 분쟁 개관
남중국해는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해상교통로가 지난가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석유 110억 배럴, 천연가스 190조㎡, 희토류는 물론 세계 어획고의 1/10에 달하는 자원보고지역이다. 중동산 석유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의 주요 해상교통로로서 원유수송량의 60%,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80%가 남중국해를 통과하며 전 세계 물동량의 30% 가량이 거쳐 갈 만큼 글로벌 물류의 중심지로서 이 해역의 물동량은 수에즈 운하의 6배에 해당된다. 또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군사안보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정치·군사·경제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안보 사활이 걸린 관문(chock point)이기도 하다.
남중국해 분쟁은 해영 영토의 주권(sovereignty) 분쟁의 특성, 관할권(jurisdiction) 분쟁의 특성, 그리고 통제(control) 분쟁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중에서 영토적 분쟁은 남중국해 도서에 대해 연안국들이 완전한 국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현재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상호간 영토주권에 대한 대립과 갈등을 안고 있다.
크게 4개의 군도로 나누어져 있는 남중국해에서 동사군도는 타이완이 실효적 지배(해병대 주둔)를 하고 있고, 중사군도는 중국의 실효적 지배하에 놓여 있다. 반면에 서사군도는 중국과 타이완,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남중국해 중에서 가장 첨예한 분쟁 대상은 남사군도로서, 중국은 남사군도 모든 해양지형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을 제외한 5개국도 국제해양법 및 역사적 권원을 내세워 각기 영유권과 해양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1992년 2월 25일의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법’에서 본토 및 그 연안도서, 대만 및 조어도(Diaoyu Island)와 그 부속도서, 팽호열도(Penhu Islands), 동사군도(Dongsha Islands), 서사군도(Xisha Islands), 중사군도(Zhongsha Islands), 남사군도(Nansha(Spratly) Islands)와 중국에 속하는 그 밖의 일체의 도서가 중국의 영토라는 것과 영해의 범위는 기선으로부터 12해리로 하며 기선으로는 직선기선 방법을 규정하고 영해를 침범한 외국 군함을 중국의 함정 또는 항공기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현황과 근거를 그림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영유권 주장 현황
출처: BBC, http://bbc.co.uk/2/hi/asia-pacific/7941425.stm
<표 1>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의 주장 근거
구분 | 주권 주장 해역 | 주장의 근거 |
중국 | 서사군도/남사군도/스카보르쇼울 | EEZ, 대륙붕, 9단선 안측 해역에 대한 역사적 권원 |
대만 | 서사군도/남사군도 전역 | EEZ, 역사적 권원 |
말레이시아 | 남사군도 7개 암초 | EEZ, 대륙붕 |
필리핀 | 스카브로쇼울/남상군도/칼라얀군도 | EEZ, 역사적 권원 |
베트남 | 서사군도/남사군도 전역 | EEZ, 대륙붕, 역사적 권원 |
브루나이 | 남사군도 1개 암초 | EEZ, 대륙붕 |
출처 : 박창권, “미·중의 전략적 경쟁과 남중국해 분쟁,” 한국해양전략연구소(편),
동아시아 해양안보 정세와 전망 2016-17, 2017, p.61.
2. 남중국해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대립
동아시아 해양은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큰 대양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세계의 강대국으로서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주요 해역이다. 특히 해상교통로 안보가 국가이익 보호를 위한 핵심사안으로 대두되면서 해군력 증강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동 해양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은 분쟁 발생의 파고를 더욱 높게 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해양질서에 대해 도전적인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해군력 강화는 최근 들어 해양분쟁을 격화시키고 미국이 이들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이해당사국간 긴장도를 높이고 역내 해양질서를 불안정케 하고 있다.
미국이 이 지역의 해상교통로를 확보함으로써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영토분쟁에 관해 동맹국 및 안보협력국을 지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것이 미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군사작전 수행 등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게는 대륙과 인접하고 있는 해양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해양에서의 자국의 영해를 지키는 수준으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 해양으로 접근하는 것을 중국의 국가이익을 침해하고 중국의 영향력과 안보능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분간 동아시아 해양은 미국을 위시한 해양세력과 중국 등 대륙세력 간 대립과 갈등이 반복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쟁의 바다’(contested water)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중 간 해양패권 경쟁 못지않게 중일 간 경쟁도 역내 해양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난 10년간 중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해양에서 더더욱 상호 적대적이 되었다. 특히 분쟁도서 인근에서의 일방적인 주권의 주장과 2010년 9월 중국어선 충돌 사건, 2012년 9월 일본 정부에 의해 분쟁지역 섬의 국유화, 일본과의 경계 중첩 인근 지역에서 중국의 가스전 개발행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향후 동아시아 해양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면서 중국의 도전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이는 상호간 협력을 촉진하면서도 해양분쟁과 관련한 예기치 않은 군사적 긴장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데, 역내 국가들이 미국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해양질서에 대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의 해양도발에 적극 대응할 것이다. 중국도 미국에 요구하고 있는 미중 간의 신형대국 관계를 보다 가시화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미국에게 자신이 주장하는 남중국해를 포함하는 ‘핵심이익’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갈등이 심각한 무력분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낮다. 미국과 중국이 쌍방에 대해 전면적인 공세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양측의 국가이익과 동맹국에 대한 공약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며, 그 충돌이 한국 등의 국가이익과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는 한국이나 일본, 타이완, 필리핀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주요 교역로이며, 대외경제 및 외교활동의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이같은 해역에서 미중 양국의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미중 양국뿐 아니라 지역 내 국가 전체의 공동손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또는 중국과 기타 역내 국가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무력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관련 국가들의 해양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해양협력의 바탕에는 이해관계국들이 힘을 통해 현재의 해양질서를 변경시키려고 해서는 안되며, 역내 해양분쟁은 평화적인 방법과 수단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고 그리고 보편적으로 승인된 국제규범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Ⅲ. 동아시아(남중국해) 해양안보에 있어서의 국제해양법의 역할과 한계
1. 국제해양법의 형성과 발전
오랫동안 관습법의 형태로 존재해오던 해양법은 19세기 말부터 국제사회의 변화와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여타 국제법 분야와 마찬가지로 점차 성문화가 요구되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며, 20세기에 들어 결실을 맺었다.
제2차 대전이후 새로이 설립된 국제연합은 국제법의 점진적 발전과 법전화를 장려하기 위하여(국제연합 헌장 제13조) 1947년 국제법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동 위원회는 1949년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국제법 전 분야에 걸친 19개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이에 관하여 연구하고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 중에도 공해 및 영해 제도에 관한 문제는 우선적으로 토의되어 1956년에 73개 조항에 달하는 초안이 작성되었다. 위원회는 이 초안을 총회에 보고하는 동시에 이것을 국제조약이나 기타 형식으로 명문화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소집할 것을 건의하였다.
국제법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1958년 제네바에서 제1차 유엔해양법회의가 개최되어 해양에 관한 4개 협약(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 공해에 관한 협약, 공해의 어업 및 생물자원 보호에 관한 협약 및 대륙붕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4개 협약은 그 때가지의 해양법에 관한 관습규칙을 전반적으로 성문화한 것으로 국제해양법의 법전화에 신기원을 이루었지만, 영해에 있어 핵심문제인 영해의 범위를 확정짓지 못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년 뒤인 1960년 제2차 유엔해양법회의가 제네바에서 다시 열렸지만 영해의 폭을 6해리로 하고 그 외측의 6해리는 어업수역으로 하자는 강대국들과 영해를 12해리로 하자는 국가들의 주장이 대립되어 결국 결정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기존 해양법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던 신생 개발도상국들의 해양법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와 진보적 입법을 위한 새로운 국제회의 개최 지지와 기존 해양법만으로는 새로운 해양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됨으로써 1973년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가 개최되어, 1982년 4월 30일 해양법협약이 채택(1994년 11월 16일 발효)되었다.
2. 국제해양법의 역할과 한계
전문과 본문 17부 320개 조, 9개 부속서 및 4개의 결의안으로 구성되어 있는 해양법협약은 ‘해양의 헌장’으로서 해양에 관한 국가관할권, 해양환경보호, 해양과학조사 및 해양분쟁 해결 등 연안국과 해양이용국의 권리의무를 망라하는 한편, 협약당사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반 기구 설립을 규정하고 있다.
동 협약의 발효는 일부 국가들의 국내법 및 관행과 협약 규정 간의 괴리를 줄이는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해양공간과 활동에 적용되는 법의 안정이라는 효과가 창출되었다. 이러한 법의 안정성은 해양법협약의 발효로 인해 과거 관습법으로 어렵게 유지되어 왔던 중요한 규범들이 협약상의 기술적이고도 정밀한 규정에 의해 또는 협약에 마련되어 있는 통제장치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더 확고히 확보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양법협약은 관할권을 확대하고 해양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연안국과 해양전략상 군함의 기동력 확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해양의 자유를 유지·확대하려고 노력한 해양강국 간의 타협으로 채택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연안국의 관할권은 확대되는 동시에 통항문제는 해양강국들의 입장이 반영되는 수준에서 조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각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뿐만 아니라 해양안보적 측면에서의 입장을 반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회의에서 각국들은 승인되지 않는 역사적 수역 주장, 부적절하게 획선된 기선, 12해리를 넘어서는 영해 주장, 해양법에서 인정되지 않는 여러 형태의 안보수역, 항행 및 상공비행을 부정하는 취지의 선언, 협약 규정에 합치되지 않는 군도수역 주장 및 무해통항과 통과통항의 과도한 제한 등 여러 범주의 국가관할권을 주장했었다.
강대국의 세계전략과 연안국의 해양정책 간에는 상반되는 이해의 충돌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현실문제로 제기되어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는 오랜 협상과정을 거쳐 각국의 해군이익을 조정하는데 일단 성공하였으나 그것이 통일된 해양법질서로 정립, 발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해양법협약이 이른바 일괄타결이라는 형식으로 채택되어 불명확한 규정이 많고 해군이익에 대한 해양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협약내용에 대한 해석에는 계속하여 기본적인 견해와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에는 영유권 분쟁과 해양경계획정 분쟁과 같은 전통적인 해양분쟁 외에도 해양법협약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군함의 통항문제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군사활동이 그것이다.
해양법협약상 영해에서는 무해통항, 군도수역에서는 무해통항과 군도항로대통항 그리고 국제해협에서는 통과통항과 무해통항(특정 조건을 갖춘 일부 해협)이 허용되며, 기타 수역들에서는 연안국의 법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 자유로운 통항을 할 수 있다. 이중 남중국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군함의 무해통항 허용여부이다.
군함이 다른 나라 영해에서 무해통항을 할 때 연안국이 이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해양법협약에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대양해군을 가진 나라들은 군함이 다른 나라의 영해에서 가급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입장을 취하였고, 그 반대로 대양해군을 가지지 못한 연안국들은 외국 군함이 자국 영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대하여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군함의 무해통항을 제한하려고 해서 그 입장이 통일되지 못하였다. 중국은 사전허가제(영해 및 접속수역법 제6조. 군함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해에 진입하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를 실시하여 보다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해양법협약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군사활동 허용여부 및 범위에 관하여 연안국과 해양강대국 간의 의견 차이로 해결을 보지 못했는데, 이는 해양의 군사적 사용에 관한 논쟁을 가능한 한 피하면서도 각자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중국은 해양법협약 조항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미국은 공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는 상업적, 군사적 접근이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는 일반적으로 ‘항해의 자유’로 표현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배타적 경제수역은 공해와 다르며 동 수역내 타국의 군사활동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타국의 감시·정찰 활동을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해양법협약은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남중국 해양분쟁에서의 역할에 있어 어떠한 한계를 노정하였는가? 협약의 채택으로 해양질서에 대한 법적 준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협약 규정들을 원용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에 유리한 해석을 통해 해양관할권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남중국 해양분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협약 그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해석하고 원용하는 국가들의 국익우선에 기반한 정책 및 이해당사국들의 협력부재에 다른 합의 도출 실패가 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처럼 해양법협약은 탈냉전 이후 남중국해 역내 국가들의 해양에서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해양관할권을 확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협약이 가져다 준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해양의 평화로운 질서를 담보해애 할 협약이 남중국해를 해양질서가 가장 불안정한 해역으로 남아있게 하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Ⅳ. 사례 검토 : 2016년 필리핀과 중국 간 남중국해 중재재판
1. 필리핀의 제소와 판정 내용
2012년 4월 10일 필리핀 함정 2척이 Scarborough(황옌다오)에서 조업하던 중국어선 8척을 나포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중국 해양감시선과 대치하는 사건이 있은 후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확보를 강화해 나가자, 2013년 1월 22일 중국을 상대로 남중국해 문제를 유엔해양법재판소(ITLOS)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ITLOS 소장이었던 야나이 지(柳井俊二)는 5명의 판사로 구성된 중재법정을 상설중재재판소(PCA)에 구성하였다.
2014년 3월 30일 필리핀은 준비서면을 제출하였으나 동년 12월 7일 중국은 중재재판소의 관할권이 없음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재판소에 전달하였다. 2015년 3월 16일 필리핀은 추가 서면의견서를 제출하였고, 동년 7월 7일부터 13일 까지 중재재판소는 구두심리를 개최하여 2015년 10월 29일 관할권이 있다고 판정하였다. 중재재판소는 필리핀이 청구한 15개 항목 중 7개에 대해서는 관할권을 인정하였으나, 나머지 8개 중 7개는 본안에서 함께 다루기로 하고 1개는 필리핀이 청구취지를 명확히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필리핀이 PCA에 제소한 15개 항목 중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필리핀과 중국의 권리는 해양법협약의 영해 및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 그리고 대륙붕 규정에 따라야 하는 바, 중국의 남중국해 구단선은 협약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중국은 국내법을 협약에 합치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Mischief Reef와 Mckenna Reef는 필리핀 대륙붕의 일부를 구성하는 수중지형이다. 당해 지형에 대한 중국의 점유 및 건설행위는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는 중단되어야 한다. 셋째, Gaven Reef와 Subi Reef는 간조노출지로 협약상 섬이 아니며 중국 대륙붕에 위치하지도 않는다. 이 지형에 대한 중국의 점유와 건설행위는 위법이므로 중단되어야 한다. 넷째, Scarborough Shaol, Johnson Reef 등 5개 지형은 만조시 수면위로 드러나는 아주 작은 돌출부분을 제외하고는 수면 아래에 있는 지형으로 협약 제121조(3)의 ‘암석’에 해당된다. 암석은 영해 이외 다른 해역을 가질 수 없으므로 중국이 이 지형을 기점으로 12해리를 초과하여 주장하는 것은 협약 위반이다. 다섯째, 필리핀은 협약에 따라 군도기선에서 12해리 영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관한 권한을 갖는다. 중국은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서 생물 및 무생물 자원을 불법적으로 이용하였고 필리핀의 이용을 방해하였다.
2016년 7월 12일 PCA는 필리핀의 청구를 대부분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다. PCA는 구단선의 역사적 권리, 남중국해 지형물의 지위, 중국측 행위의 합법성 및 해양환경 훼손 등 4가지 주요항목을 중점적으로 심리했다. 판결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47년 지도를 근거로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는 남중국해 구단선은 해양법협약의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법률적 근거가 없다. 남사군도는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집합적인 해양수역이 될 수 없다. 둘째, 남중국해 최대지형물인 이투아바(태평도, 필리핀의 제소내용에 포함되지도 않았음) 등을 포함한 모든 지형물은 암석이며, 따라서 법적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갖지 못한다. 셋째, 중국은 스카보러 암석 등에서 전통적인 필리핀의 어업과 원유탐사를 방해하고, 중국어민의 어업을 금지시키지 않았으며, 인공섬을 건설하는 등 배타적 경제수역 내 필리핀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넷째,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미스치프(메이지자오) 암석에 세운 중국의 인공섬이 해양 생태계에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쳤다. 다섯째, 중국은 남중국해 수역에서의 자원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권리도 갖고 있지 않으며, 양국이 가입한 해양법협약에 의거한 배타적 경제수역과 양립할 수 없는 한 이러한 권리는 소멸된다.
2. 중재 판정과 해양법협약
해양법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를 넘어 과도하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는 PCA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판정은 해양법상 어떠한 의의를 갖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본 고에서는 영유권 판정에 있어서의 역사적 권원과 역사적 권리의 구분, 남중국해 해양지형들의 법적 지위 및 중재판정의 법적 효력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전자 2가지가 해양법협약의 해석에 관련된 것이라면 마지막 3번째는 협약의 강제적 집행의 한계와 관련된 것이다.
우선 중재재판소는 구단선 내의 수역에 대해 판정하면서 해양법협약 제298조 1항(a)(1)에 비추어 볼 때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에 관한 분쟁은 재판소의 관할권 대상이 아니지만 역사적 권리(historical rights)에 관한 분쟁은 그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국이 구단선 내의 석유 및 어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은 역사적 권원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권리의 주장이기 때문에 중국의 구단선 내에서의 관할권 주장은 해양법협약의 위반으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의 역사적 권원에 대해서 중재재판소는 역사적 권원의 근거, 권원의 대체 그리고 대체 이후 실효적 지배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역사적 권원이 아니라 역사적 권리라고 판정한 것은 역사적 권원의 본질에 관한 중재재판소의 공정한 실질적 심사가 행하여지지 아니하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다음으로 남중국해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에 대해 설펴보자. 필리핀의 청구내용을 검토한 중재재판소는 해양법협약 제121조 상의 ‘도서’와 ‘암석’의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한 후 각 지형들이 ‘도서’, ‘암석’ 또는 영해도 갖지 못하는 ‘간출지’인지를 판단하였다. 특히 필리핀의 청구내용에는 없었지만 남사군도에서 가장 큰 지형인 이투아바(태평도)를 도서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다른 모든 지형들이 도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으며, 필리핀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이내에 있는 미스치프 암초와 세컨드 토마스 숄을 간출지로 판단하였다. 중재재판소는 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의 도서와 암석의 판단기준으로 해양 지형의 객관적 능력(objective capacity), 자연적 상태(natural condition), 안정적 주민집단(stable community of people) 또는 독립적 경제활동(economic activity that is neither dependent on outside resources nor purely extractive in nature) 유지 등의 요건을 구체화하였다. 또한 어부들에 의한 일시적인 지형의 사용은 안정적 주민집단의 거주로 보지 않았고, 남중국해에서 행해진 모든 역사적 경제활동을 본질적으로 채집적인 경제활동으로 확인하여 문제된 남중국해 지형들의 도서로서의 요건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중재재판소는 ‘인간의 거주’와 ‘독자적인 경제생활’이라는 조건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였다. 물론 이번 판정이 도서의 판단에 기판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소의 이러한 엄격한 해석은 독도의 도서로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재재판소의 판정에 대한 법적 효력을 살펴보자. 중재판정에 대해 제소내용이 거의 받아들여진 필리핀은 PCA 판정은 남중국해 분쟁 해결에 기여하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이를 존중할 것임을 천명하였으며, 미국은 중재판정이 구속력이 있고 최종적인 것이라면서 중국에 이를 준수할 것을 압박하였으나, 중국은 이번 판정이 과정으로나 법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고 증거와 사실을 잘못 파악한 부분이 많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중재 판정은 실제 어떠한 효력을 갖는가? 중국에 대해 강제력을 갖는가? 중국은 재판 자체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판정 내용을 인정하지도 이행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이다. 애석하게도 이번 판정의 강제집행력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판정 결과를 중국에 강제할 수단이나 방법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중재재판의 결과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상황에서 관련국들이 판정 결과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재수단을 활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국제해양법재판소, 국제심해저기구 및 대륙붕한계위원회 등 해양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기구들에서 해양법협약 회원국 권리로서 향유하는 중국의 권리에 대한 제한이 논의 차원에서 제기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 또한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이번 중재판정에 대해 상반된 평가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중재판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는 이번 판정이 해양법협약 상 역사적 권리의 개념을 규명함으로써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의 역사적 권리의 법적 효력을 무효화하고, 해양법협약의 제121조 3항에 대한 해석기준을 제시함과 동시에 남중국해 해양지형들의 법적 지위를 규명함으로써 다수 국가들 간의 광범위한 분쟁을 양자 간 분쟁으로 축소시키고 분쟁의 해결과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고 본다. 그러한 중재판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는 이번 판정이 기존 국제재판소의 판결례와 실무관행에서 이탈하면서 상세한 판결이유를 제시하지 않았고, 중국 주장 구단선 또는 남중국해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를 결정함에 있어 중재재판소가 정한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해양법협약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중재판정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국제판례이다.
이러한 판정에 대한 상반된 견해와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해양법협약은 남중국해 해양분쟁에 있어서 연안국들의 권리의무와 분쟁해결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각국의 입장과 협약 규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 오히려 분쟁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러한 차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출발은 역설적이게도 해양법협약 제 규정의 입법 취지와 왜곡없는 해석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Ⅴ. 결언
미국은 남중국해 상당 수역을 공해로 보고 자유항행작전(Freedom of Navigation)을 전개하면서 군사적 존재감을 보이거나 혹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합해군훈련을 통해 해양질서 안정 및 역내 국가들에 대한 안보공약을 이행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동 수역을 자국의 핵심적 이익으로 간주하면서 남중국해 분쟁은 기본적으로 역내 국가들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미국은 이에 대해 이해관계국이 아니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각 함대의 해군 전력을 동원하여 합동훈련의 빈도를 늘리고 있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조약 체제 이후 지속되어온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과 경제력에 걸맞는 해양력 강화를 추진해온 중국은 현재 역내 많은 국가들과 영유권과 관할권 문제로 충돌함으로서 동아시아 해양분쟁의 중심에 위치해있다.
해양법협약, 특히 협약을 준거로 한 PCA의 중재판정도 남중국해 해양분쟁의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오히려 갈등을 확대시키고 상대에 대한 불신을 더욱 조장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오랫동안 지속될 전망이며, 대·내외적 환경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해결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견지해 온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분쟁해결 준거로서 국제(해양)법 준수를 계속 강조하면서도 주변 상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우리의 안보상황을 감안하여 미·중 간 갈등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미·중 양국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읽고 우리가 관여해야 할 수준을 명확히 하는 한편, 상황 변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을 다양하게 개발·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 간 신뢰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의미있게 작동되도록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존에 구축되어 있는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이를 발전시켜 각국의 이견을 좁히려는 외교적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견국가로서의 소프트 파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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