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후 수군재건 과정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위기관리 리더십 > E-저널 2019년 ISSN 2465-809X(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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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호(4-5월) |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후 수군재건 과정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위기관리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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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임익순(충남대학교) 작성일19-05-15 15:19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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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후 수군재건 과정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위기관리 리더십

임  익  순

 평시에 전투부대를 창설하고 육성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과업이다. 우선 병력을 차출하고 편제에 맞게 편성을 하며, 장비와 무기, 탄약을 획득하여 분배하고 전투를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교육훈련을 하여야 한다. 또한 병력들이 기거할 수 있는 병영이나 기지를 만들어야 하고, 복장을 갖추고 식사를 제공하여야 한다. 더구나 전쟁 중의 패배로 인해 거의 해체 수준에 있는 부대를 다시 재건한다는 것은 평시에 비해 수십 배의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군의 경우에는 특히 함선이라는 전투수단이 필수적이지만 함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과업인 것이다. 게다가 노를 저어야 항해를 할 수 있는 조선시대라면 노젓기에 숙련된 병사를 구하는 것은 갑판 위에서 전투를 하는 병사보다 구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전투에 필요한 활과 화살, 포에 쓸 탄환과 화약을 구하는 일은 지난한 과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순신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여 전인 1591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후 신무기인 거북선의 개발과 실전배치 및 운용, 전선배가계획에 의한 수군의 증강, 전선의 증가에 따른 화포와 화약의 제조 등 왜의 수군을 격멸하기 위한 조치를 추진하여 수많은 해전에서 거의 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강화회담이 진행되면서 장수에 대한 평가 요소가 달라지고 과거의 공로에 대한 시기나 질투와 같은 전투 이외의 일들이 쟁점이 되면서 이순신은 15972월 통제사 직에서 해임됨과 동시에 투옥되었다. 같은 해 4월 초에 출옥한 뒤 백의종군 처분을 받고 도원수 권율을 보좌하면서 남해안 연해의 실정을 많은 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도중에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조선수군이 궤멸당하고 원균도 패사하자 그 해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기용되었다. 거북선을 포함하여 300여 척에 이르는 막강한 조선 수군이 순식간에 거의 모든 세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가용한 전선과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른 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것이다. 이순신은 통제사 직을 다시 제수 받은 83일부터 왜군과의 조우를 피해 구례를 거쳐 전라우수영이 있는 해남방향으로 행군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순신은 15일 동안 약 250km에 이르는 장정을 통해 잔여 수군을 수습하면서 왜군의 서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수군재건을 추진했던 것이다.

통제사 재임명 후 이순신의 수군수습 행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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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이 수군을 수습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한 그 때 왜군도 남원을 점령하기 위해 서진하고 있었다. 왜의 육군은 진주방향에서 하동으로 이동하여 이순신이 철야행군을 통해 8월 4일 하동 부근의 두치를 통과한 지 한나절이나 하루 낮 정도의 시차를 두고 하동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순신이 8월 4일 저녁 무렵에 구례에 도착하여 옥과로 이동하였는데 왜의 육군은 바로 8월 5일에 구례를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2) 이와 같은 우연속의 천운에 힘입어 이순신은 간발의 차이로 왜군과 조우하지 않고 보성을 거쳐 전라우수영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잔여 수군을 수습하고 수군 재건의 발판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이순신은 우수영으로 이동 중에 8월 5일 옥과에 이르러 거북선 돌격장 이기남의 부자를 편입하고 6일에는 옥과에서 유숙하였는데 이때에서야 왜군과의 조우를 회피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 8시 경에 적정을 탐지하라고 보냈던 송대립이 돌아왔고, 강정에서는 전라병사의 군사로부터 군마 3필과 약간의 활을 획득하였다. 이어서 부유창에 도착해서는 중 혜희를 만나 의장첩을 수여하고 승군을 의병으로 모집하여 왜적을 무찌르도록 하는 한편 총통과 장편전을 획득하였으나 총통은 무거우므로 땅에 파묻고 표시를 해두고 장편전만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 이순신은 보성에 도착한 8월 15일에서야 군사 120명을 수습함으로써 빈약하나마 부대의 모습을 갖추었다.
  병력을 수습한 이순신은 이어서 8월 17일 전선을 수습하기 위해 배설과 약속한 장흥의 군영구미에 도착하였으나 배설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순신은 다시 회령포로 이동하여 8월 17일에 전선 10척을 인수하여 거북선으로 단장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경상우수사 배설은 배 멀미를 핑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회령포에서 전선을 수습하고 이미 편입된 병력과 함께 함대의 모습이 갖추어 지자 8월 19일 이순신은 전 병력에게 국왕의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에 대한 교서에 숙배하게 하고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자는 훈시를 통하여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대비할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열악한 여건에서 통제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휘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8월 20일 회령포에서 해남의 이진으로 함대를 이동시키고 24일에는 다시 어란포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이순신은 적이 온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부대를 동요시킨 자를 참형에 처하여 군령의 엄정함을 보여줌으로써 정신적인 대비를 하도록 하였다. 8월 27일에 척후장 임준영이 적이 이진에 도착하였음을 보고하였고 다음 날 왜군이 어란포 앞바다에 출현하자 적선을 추격하도록 하여 적을 철퇴시킨 후 8월 29일 진도의 벽파진으로 함대를 이동시켜 왜군과의 일전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후 이순신의 수군 수습활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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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통제사로 재임명된 8월 3일부터 벽파진으로 옮긴 8월 29일까지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소계남이 지휘하는 전선 2척​4)을 비롯하여 회령포에서 배설로부터 인수한 전선 10척​5)을 포함하여 12척의 전선으로 함대를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전선 1척을 추가로 획득하여 13척의 전선과 초탐선 32척을 수습​6)하여 왜군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함대세력을 지휘하여 9월 16일 왜 수군의 133척 함대를 명량해협 너머 우수영 앞바다에서 격퇴시키고 왜군의 서해 진입을 차단한 뒤 계속해서 수군의 재건활동을 추진하였던 것이다.​7)
  명량해전 이후 수군재건에 있어 이순신이 당면한 문제는 병력의 충정과 군량 확보, 그리고 함대의 월동준비 등이었다. 우선 병력충정에 대한 문제를 보자. 명량해전 이전에는 잔여 전선을 운용하던 격군과 사부를 토대로 과거 이순신 휘하의 장병들이 다시 모여들어 전선의 전투력을 증강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명량해전 이후에도 계속되어 이순신 휘하로 자원해서 모여든 장병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원하여 편입되는 군사들 이외에도 이순신은 장수들을 파견하여 병력을 모집하도록 하였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충정된 병력은『이충무공전서』의 부록 「기실」과『징비록』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명량해전 전후로 1500여 명이던 병력이 1598년 2월 17일 고금도로 이진할 때에는 두 배 이상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8)
  군량의 확보는 몇 가지의 방법을 동원했는데 해로통행첩의 발부와 전라도 해안 지방의 미수확 곡물의 수거, 각처의 사족에 대한 의곡(義穀)과 휘하 장수들에 의한 모곡(募穀), 자염(煮鹽) 판매로 만든 재원을 이용한 매입 등이 그것이다. 해로통행첩은 명량해전이 끝난 후 왜군 정탐선의 색출과 군량 확보를 목적으로 이순신의 함대를 추종하는 피난선들을 대상으로 발부되었다. 명량해전이 끝난 후 이 피난선들은 이순신 함대 주변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전란 중에 안전한 곳을 찾으려는 백성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발동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유성룡의『징비록』에 따르면 피난선들은 상당한 재물과 곡식을 싣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은 이 피난선들에게 해로통행첩을 발부하면서 배의 크기에 따라 차등을 정하여 곡식을 바치게 했는데 이 방법으로 10여 일만에 만여 석의 군량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9)
  전라도 해안 지방의 미수확 곡물은 백성들이 전란으로 인해 피난을 떠나 미처 거두지 못한 것이었는데 이순신은 영암과 나주 등지에 군관을 파견하여 주인 없는 곡물을 추수하여 군량으로 확보했던 것이다.​10) 의곡은 각처의 사족들이 자원하여 모아서 바치도록 한 것인데 그 양은 대체로 수십 석에 불과하였다.​11) 모곡은 휘하의 장수들을 파견하여 군사모집과 동시에 군량을 확보하도록 한 것인데 이것을 통해 900여석의 군량곡을 준비하였다.​12) 또한 한산도에 주둔할 때와 마찬가지로 소금을 만들어 군량을 마련하는 재원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은 고하도로 이진하기 며칠 전에 김종려를 소음도 등 13개 섬의 소금을 관리하는 감독관으로 보냈다고 난중일기에 적고 있는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군량을 준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13)
  이순신의 수군수습과 재건과정은 한마디로 처절한 것이었다. 6년여에 걸친 전란으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고 지방의 곡물생산도 통제가 되지 않아 조정으로부터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야전 지휘관인 이순신의 구상과 열정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한 이후 두 달 동안 패잔한 수군을 수습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그 이후 수군을 재건하여 왜군의 서진을 차단하면서 노량해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까지의 1년 3개월의 과정은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 역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기간이었다. 전라좌수사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직분에서 보여주었던 평시 부대 운영과 임진왜란 초기전투에서의 리더십과는 또 다른 차원의 위기관리 리더십의 원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과감하게 통솔하라, 위기를 지속적으로 구조화하라,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비하라 등이 그것이다. ‘과 감하게 통솔하라’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는 결단력 있게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리더가 조급해 할 경우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완전한 정보를 기다릴 경우 적시 조치에 실패할 수 있으므로 결단력과 균형감각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위기를 지속적으로 구조화하라’는 것은 복수의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진행방향을 예측하는 프로세스가 수립되어야 하며, 새로운 분석결과에 따라 필요 시 기존의 대응계획을 수정하여야 함을 말한다.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비하라’는 것은 한 명의 위기관리자가 이러한 변수들에 모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수의 관리자를 지정하여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에 대해서도 대응토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보여준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후 수군의 수습과 재건과정에서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현대적 시각에서의 위기관리 리더십 원칙을 적절하게 활용한 리더십이었다.
 
참고문헌
 ​1)조성도(2004), 전게서, p.300.과『난중일기』의 1597년 8월 3일부터 8월 29일까지의 기록을 참조하여 정리하였음.
 ​2)『난중잡록』권3, 정유년(1597년) 8월 6일 조에서 조경남은 이때의 상황을 “통제사 이순신이 원수의 진중에서 출발하여 진주의 서로를 거쳐 구례로 향하다가 적선이 이미 나루터에 있는 것을 보고 곡성을 거쳐 서해로 나아갔다.”라고 하였다.; 조성도(2004), 전게서, p.298.
 ​3)조성도(2004), 전게서, p.300,과『난중일기』의 1597. 8. 3일부터 8. 29일까지의 기록을 참조하여 정리하였음.
 ​4)『이충무공전서』권8, 일기, 정유년 8월 13일: "거제와 발포를 돌려보냈다.(巨濟鉢浦還歸)” 이 내용은 전날인 12일에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소계남이 명령을 들었다는 일기에 이은 복귀 조치로 보이며 조성도는 이것을 이들 두 장수가 지휘하던 배(전선)로 복귀시킨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조성도의 해석에 따르면 이순신은 회령포에서 배설로부터 전선 10척을 인수받기 전에 이들 두 장수가 지휘하는 배 2척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5)『이충무공전서』권9, 부록1, “행록.”
 ​6)『선조실록』, 1597년 11월 10일 5번째 기사. 선조는 명나라의 제독 총병부에 적군의 동태와 이순신의 전과를 알리는 문서에서 이순신의 장계를 인용하여 명량해전에서 아군의 함대세력이 전선 13척과 초탐선 32척이라는 것을 밝혔다.
 ​7) 명량해전에 대한 내용은 이 장(제5장)의 4절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8)『이충무공전서』권13, 부록5, “기실”에는 천 여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고『징비록』에는 고금도로 이진할 즈음의 병력이 8천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9)『징비록』권 2.
 ​10)『난중일기』, 1597년 12월 4일.
 ​11)상게서, 1597년 11월 7일; 28일.
 ​12)상게서, 1597년 11월 5일.
 ​13)상게서, 1597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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