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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호(6-7월) |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관한 이론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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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승준(콤스텍(주) 수석전문위원, 忠南大學校 國家安保融合學部 겸임교수) 작성일19-06-27 16:07 조회2,7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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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안보포럼 이 저널 기고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관한 이론적 고찰

 

콤스텍(주) 수석전문위원, 忠南大學校 國家安保融合學部 겸임교수

 

李 承 俊

 

 

2019年  6月


          
목    차


Ⅰ. 인류 문명의 탄생과 대륙·해양세력의 형성

Ⅱ.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상관성

Ⅲ.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관한 이론적 발전

   1. 대륙세력 이론(Land Power Theory)

   2. 해양세력 이론(Sea Power Theory)


Ⅰ. 인류 문명의 탄생과 대륙·해양세력의 형성

 인류의 문명이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만 년에서 1만 년 전이었으며 그 후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인류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독특한 문명을 탄생시켰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것은 기원전 3,500년경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서남아시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페르시아 만에 걸친 지역을 말하며, 이집트는 나일 강 하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지역 사이에 펼쳐져 있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는 ‘기름진 초승달’지역이라는 곳이 있으며, 여기에서 최초의 도시가 탄생됐고, 이와 함께 최초의 문명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문명에 뒤를 이어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과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도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 이들 4대 문명지는 모두 지구의 북반구로서 큰 강을 끼고 있었고, 또 인간이 살기에 좋은 기후와 함께 기름진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 문명은 점차 넓은 지역으로 번져 나가서 기원전 1천 년 무렵에는 오리엔트 및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세계사편찬회, 2017).
이 과정에서 인간은 언제 부터인가 동족의식을 지니고 집단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존공간인 영토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토지를 둘러싸고 서로 빈번하게 싸움을 벌였다. 인간 집단은 민족이나 국가라는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회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더 넓고, 더 좋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전쟁을 해왔다. 그러므로 인류가 수행한 일련의 전쟁들은 영토라는 지리적 조건(지정학적 요인)과 깊은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다카하시 요이치, 2018).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공간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 지정학(geopolitics)은 육지(land) 및 공중(the air space)과 더불어 바다(sea)라는 공간에 관한 지식을 어떻게 하면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지적 능력으로 변경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찰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전웅, 1999).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근세의 쟝 보뎅과 몽테스키외, 현대의 지정학을 발전시킨 라첼, 첼렌, 마한, 맥킨더 등은 한 나라의 국민성, 정치제도 및 행위형태가 그 나라의 위치, 지형, 규모, 기후 등 지리적인 요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경험적 사실로 입증하였다. 정치지리학은 국가의 성쇠를 영토라는 지리학적 환경 이론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데, 독일의 지리학자인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1844~1904)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그 후로는 O. 마울 등 독일의 지리학자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전되었다. 그리고 스웨덴의 정치학자 첼렌(J. R. Kjellen, 1864~1922), 독일의 군인이며 지리학자인 하우스호퍼((Karl Ernst Haushofer, 1869~1946) 등에게 계승되어 지정학(地政學)으로 발전하였다. 하우스호퍼는 역사의 25%가 지리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므로 지정학은 정치지도자들에게 국가의 성장, 번영, 그리고 안보에 사활적이라고 생각되는 가치와 목표를 일깨워주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공간관리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지정학은 여러 이미지들을 불러내는 용어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용어는 전쟁, 제국, 외교에 관한 착상을 불러일으킨다. 지정학은 영토를 통제하고 쟁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행위라 할 수 있다(Colin Flint, 2009). 전통적으로 지정학은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 즉 역사적 변동의 추동력, 국가 간 전쟁의 원인, 어떤 나라의 강대국 부상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 등에 대해 중립적이고 완벽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Colin Flint, 2009).
지정학은 ‘지리적인 조건이 한 나라의 정치나 군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지리적인 조건이란 영토나 그 주변 지역을 뜻한다. 영토에는 그것을 빼앗기 위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 즉 전쟁이 따른다. 그러므로 지정학은 곧 전쟁의 역사를 배우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다카하시 요이치, 2018).
지정학을 현대세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공하기 위한 관점에서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정학은 영토전략의 실행과 표상이다.” 국가들이 영토와 그에 속한 자원들을 차지하기 위해 어떻게 경쟁하는가에 주목해보면, 19세기 말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에서 자국의 식민통제를 확대하기 위하여 상호 간에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시에는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웠다. 21세기에 들어서는 테러에 대한 전쟁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가들은 동맹을 체결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중앙아시아 기지에 군대를 배치하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의 실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악’에 대한 투쟁, ‘민주주의’의 확산 등과 같은 표상의 역할이다(Colin Flint, 2009).
지리적으로 보면 지구표면은 육지가 약 3분의 1이고, 나머지는 바다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구표면의 72%(3억6,500만㎢)가 광활한 바다인 반면, 28%(1억4,450㎢)는 대륙들과 도서들로 구성된 협소한 육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구표면은 인류생존의 근거지로서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 가치가 변화되어 왔다. 대륙과 해양은 인류가 국가를 건설하고 오늘날의 국제사회로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형성되었으며 양 세력은 서로 경합을 벌이면서 인류의 역사를 주도하게 되었다.

Ⅱ.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상관성

문명의 발상지가 된 큰 강들은 바다로 흘러들고 있어 곧 해양으로 접근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 해양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물의 교역로 역할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전쟁에서는 해상기동로로 빈번히 활용되기도 하였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해양탐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해양이 개척되기 시작하면서 세계사의 중심에 해양이 자리 잡게 되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깊은 상관성을 띠고 있다. 즉 한 세력이 부상하면, 다른 세력은 침강하는 특성인데 이는 결국 두 세력 간의 패권경쟁으로 이어진다. 두 세력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전쟁을 촉발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해양세력은 대륙세력이 주도하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새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대륙세력이 주도해왔던 세계질서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서유럽 국가들이 해양세력으로 부상하자 유럽의 다양한 민족과 세력의 경쟁과 각축이 격화되어 갔다. 1500년대 유럽대륙 한가운데를 무대로 30년전쟁의 참화와 이 전쟁을 수습한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의 크고 작은 세력들에게 획정된 영토와 그 안에서의 배타적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국가(Nation State) 체제, 그리고 이에 기반한 세력균형 질서를 만들어냈다. 각 세력 간 힘의 균형을 통해 공존을 추구하는 세력균형 질서의 핵심은 압도적인 패권국가의 출현을 막는 것이었다. 각 세력 간에는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고 이는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베스트팔렌체제 전후로 유럽 지역의 질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의 세력에 의해 조율되고 있었는데 특히 독일의 세력을 관리하는 것은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독일은 유럽 대륙 내에서 동서로 팽창하기 유리한 지정학적 이점과 이 경우 주변국의 집중 견제라는 제약을 동시에 안고 있는 국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유럽 지역에서는 독일이 분열되거나 약화되면 그 주변국은 부상하였고, 반면 강해지면 독일의 패권국가화가 추구되었다. 오스트리아 주도 합스부르크제국의 확대는 30년전쟁을, 독일의 분열과 약화는 프랑스의 부상을 통한 나폴레옹전쟁을, 독일 통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초래한 바 있다.
영국은 유럽 대륙과 바다로 격리된 지리적 이점 때문에 대륙의 분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며 해양 진출에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영국은 이 세력균형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유럽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였다(Henry A. Kissinger, 2014).
동북아시아에서도 이와 같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상관성은 잘 드러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1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에 건립된 국가들에게는 바다보다 육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현명한 생존 전략이었다. 왜냐하면 유라시아 동부 평원에는 기마 문명이 발달한 여러 세력이 있어서 이들의 침략을 막는 것이 국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명나라에 대항하여 전쟁을 불사했지만, 조선은 명나라와의 전쟁보다는 화친을 통해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바다에서 유일하게 경계해야 할 일본은 항해 및 선박건조 능력이 미흡하여 크게 경계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고려와 조선은 대륙과 접한 북쪽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해안에는 소규모 왜구의 출몰에 대비하고 있었다. 한반도에 위치한 국가들은 반도의 특성상 육상과 해상으로부터의 침략을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안보를 달성할 수 있었다(김시덕, 2015).
그러나 16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일본이 유럽 상인과 선교사를 통해 해양세력 중심의 세계질서에 눈을 뜬 후 해양국가로서 국력을 결집하여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려고 하자 이런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임진왜란(1592~1598)을 통한 일본의 야욕은 조선과 명이라는 대륙세력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이와 같은 해양세력의 발흥은 중국 대륙에서 명나라가 청나라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20세기에 들어 해양세력으로 성장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였다.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함으로써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해양세력의 부상이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중국과 소련의 대륙세력에 밀려 한반도에서 축출되었지만, 일본을 이용하여 대륙세력의 팽창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의해 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반도에서는 한·미·일 3국의 해양세력과 북·중·러 3국의 대륙세력 간의 갈등과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은 서로 깊은 상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관한 이론적 발전

 1. 대륙세력 이론(Land Power Theory)

지정학은 사상과 실천 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민국가가 지배적인 정치제도에 의해 수립되는 것과 연결된다. 특히 지정학의 발전은 19세기 말과 연관되는데, 이 시기는 열강 사이에 경쟁이 증대되던 시기였다. 그 당시의 지정학은 국가 간의 갈등영역으로 이해되면서 서구 열강들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데 있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Colin Flint, 2009).
과거에 있어 역사란 로마제국, 중국제국, 그리고 러시아제국과 같은 대륙의 지배에 기초한 거대 육상세력들의 어떤 형태를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 지정학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출현한 핼퍼드 매킨더(Halford J. Mackinder, 1861~1947)는 지정학자로서 기존의 지정학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핵심사상은 레이건 대통령의 핵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른 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계속해서 ‘심장지역’(Heartland) 이론의 장점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매킨더는 이외에도 지정학의 다양한 정치적 맥락을 연구하여 주장하였다.
매킨더는 지구정치학을 하나의 ‘닫힌 체계’로 보고 상이한 국가들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갈등의 주요 축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904년 대륙세력의 지리학과 역사를 설명하면서, 유라시아의 핵심부를 추축지역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지역이 추축지역이라고 불린 이유는 매킨더의 유럽 중심적 시각에서 볼 때, 세계사는 이 추축지역으로부터 일련의 침략과정을 통해 해양으로 뻗어나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 의 영향을 받았던 매킨더는 과거에 해양세력이 유리하다고 믿었으나, 철도의 도입으로 인해 대륙세력이 유리해졌다고 보았다(Halford J. Mackinder, 1962).
매킨더는 동부 유럽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은 독일의 도전에 직면한 영국의 세계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1924년 독·소동맹에 맞서 미국과의 ‘중위권대양동맹’(Midland Ocean Alliance)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그는 소련 영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심장지역’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고,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냉전 전략가들과 NATO 지지자들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Colin Flint, 2009).
대륙세력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로마제국이다.
로마는 전설에 의하면 아이네스가 기원전 1180년에 테베레 강 근처에 와서 딸의 이름인 로메(Rhome, 그리스어로 ‘힘’이라는 뜻)를 따서 로마를 건국했다고 한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고도 한다(Jean Yves Boriaud, 2007). 그렇지만 공식적인 건국 시기는 기원전 720년이다.
초기 로마는 로물루스를 초대왕으로 왕정을 시작하여 수대를 거치는 동안 라틴족의 정복과 식민지의 확대 등을 통해 육지와 바다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기원전 4세기말이 되자 로마는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고 기원전 272년에는 이탈리아 남부인 타렌툼을 손에 넣으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다. 이후 로마는 영토 확장을 위해 지중해로 진출하면서 전쟁을 계속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후 카르타고의 과거 영토였던 지역을 아프리카라는 속주로 귀속시켰다(Jean Yves Boriaud, 2007).
기원전 133년에는 아틸라 왕으로부터 페르가몬 왕국을 넘겨받으면서 아시아에서도 속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서 기원전 31년 악티움해전을 통해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연합한 함대를 격파하고 그리스와 이집트를 제압하였다. 이로써 로마는 지중해 일대와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로마는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제1대 로마황제로 등극하면서 로마제국 시대를 열었다. 로마제국은 대륙세력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을 규합하여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오랜 기간 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둘째, 중국제국이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진나라의 시황제가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래 한족(漢族)이 중심이 되어 이를 지배해왔다. 한족은 자신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중화사상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한족은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주변의 다른 민족에 대해 상하관계를 명확히 하는 책봉·조공 체제를 수립하고자 주력하였다.
중국 대륙은 17세기 중엽 한족의 명나라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 만주족이 중심이 된 청나라가 세워졌다. 청나라는 조선, 류큐, 타이완, 베트남, 타이, 미얀마, 네팔, 티베트, 몽골에 이르는 주변지역 국가들을 직할령, 조공국 등으로 만들면서 세력을 확대하였고, 유럽 국가들과 교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하였다. 이때가 중국이 가장 번성했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청나라가 세력을 확대한 지역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지역이 내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은 전통적으로 내륙중심의 세력 확대를 중시해왔다는 것이다.
셋째, 러시아제국이다.
러시아는 9세기 말에 동슬라브인이 주축이 되어 현재의 우크라이나 수도 주변에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키예프 공국은 10세기 말까지 번성했으나, 13세기 전반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정복당하여 몽골제국의 일부인 킵차크 칸국으로 거듭났다. 1480년 몽골로부터 독립한 모스크바 대공국은 주변 지역을 통합해 나가면서 1721년에는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반부를 모두 차지할 정도로까지 팽창하였다. 광활한 지역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대지와 부동항(不凍港)을 원했던 러시아는 남쪽지역에 대한 야심을 갖고 있었다(다카하시 요이치, 2018).
러시아는 1917년 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으로 재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미국이나 서유럽과는 다른 이데올로기로 대립한 채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온 남하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부동항 확보를 위해 극동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들과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이 러시아 또한 전통적으로 내륙중심의 세력 확대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사례와 같이 중국, 러시아 등은 내륙의 강대국들로서 주로 대륙세력 이론을 바탕으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세력을 키워나갔다. 단지 로마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통합함으로써 오랜 기간 동안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었으나, 해양세력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지중해에 대한 제해권 상실)하면서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전웅, 1999).


 2. 해양세력 이론(Sea Power Theory)

역사적으로 대륙세력 이론과 대조되는 해양세력 이론은 16세기 이후 대양항해술의 발전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소위 해양시대가 개막된 데서 시작되었다. 해양세력으로 분류되었던 대표적인 나라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있다. 이들 해양세력 국가들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대양으로 진출하면서 경쟁적으로 해외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바야흐로 국제사회는 해외식민지 경영을 통해 국가이익을 증대하려는 해양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대국들에서는 흔히 대륙이익과 해양이익이 서로 충돌하게 마련이고 결국 어느 한쪽이 승자가 된다. 영국은 18세기 이후에야 극히 점진적으로 해양대국의 요소들을 발전시켰다. 즉 영국에서는 1701~1714년에 이르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기간 해양이익과 육상이익 간의 갈등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다. 영국은 국내 정치적으로 해안지역과 무역도시를 기반으로 한 자유당(Whigs)과 반대로 구토지귀족들을 대변하는 보수당(Torries) 사이에서 당파적 갈등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근대 영국은 결국 해양정책이 대륙정책을 압도하면서 해양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아직도 소영국 대 대영국의 논쟁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전웅, 1999).
19세기에 들어 해양국가들이 증가하면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구분하여 비교하던 구시대의 관행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해양세력들 중에는 과거 대륙세력이었던 국가들이 많이 포함되고 있다. 오늘날 ‘강대국들’이라는 개념을 대륙세력 국가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앞으로 세계적인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륙적 동기와 해양적 동기가 결합된 거시적인 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해양세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륙팽창이기 때문이다. 결국 해양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으로 작용한다.
대륙적 국면과 해양적 국면 모두를 지니고 있는 국가에서는 두 세력의 대조가 현저하게 나타나며, 양 국면은 정책적으로 번갈아 가며 바뀔 수 있다. 그 한 예로서, 유럽지역에서 프랑스가 국가이익의 방향을 지중해나 또는 대서양으로 돌릴 때마다 유럽대륙내의 인접 국가들은 안도하였다. 하지만 프랑스가 멕시코와 미국의 남부 연방을 자국의 영향권에 편입시키고자 기도했을 때는 독일과 이태리의 동맹을 촉진시켰다. 또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영국이 자신을 바다에서 몰라내자 유럽대륙을 석권하였다. 아부키르(Aboukir)와 트라팔가(Trafalgar)에서 프랑스의 해양력이 붕괴되자 대륙의 아우스터릿츠(Austerlitz), 예나(Jena) 그리고 바그람(Wagram)에서 프랑스의 육상세력이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군을 패배시켰다.
근대적 해양세력 이론의 발전은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Alfred T. Mahan, 1840~1914)과 영국의 콜벳(Julian S. Corbett, 1854~1923)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Alfred T. Mahan, 1895). 학술적으로 ‘해양세력’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학자는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Alfred T. Mahan, 1840~1914)이다. 마한의 해양세력 이론은 19~20세기 서구 열강들의 해군력 증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제시한 해양력(Sea power)과 제해권(Command of the Sea)의 개념은 근대 해양세력 이론 정립의 기초가 되었다.
마한은 제해권을 장악하여 자국의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적의 해상교통로를 위협하여, 해양에서 이루어지는 적의 경제활동을 질식시킴으로 적의 전쟁 지속력 파괴를 주장하였다. 또한 함대결전을 통해 적의 함대를 해상에서 격퇴시켜야 한다고 보았으며, 국가에 유익한 사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의 함대작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민지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바다에서 국력의 발전을 기도하는 정부의 최우선 임무 중의 하나가 식민지든 군사기지든 해외기지를 확보하여 전선들에게 연료를 공급하고 정박지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Alfred T. Mahan, 1895).
마한이 국가적 차원에서 해양력을 정의하고 그 역할을 강조하였다면, 콜벳은 해전의 이론을 더욱 체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콜벳 또한 바다를 경제활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보고 해군의 존재를 국가 해양이익 보호를 위한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해양력과 제해권에 대한 이해는 마한과 달랐다. 콜벳은 해양력을 국력을 구성하는 일부로 보고, 바다에 대한 국가의 이익을 주로 연안지역에 한정하여 육군과 해군의 상호관계를 중요시하였다. 특히 제해권을 시·공간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함대결전을 통한 제해권 확보보다는 전쟁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해양사용만 보장하는 해양통제(Sea Control)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결전, 봉쇄, 현존함대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주장했다.
마한과 콜벳의 해양전략에 대한 개념은 주로 미국이나 영국 등 전통적인 서구 해양강국 중심의 해양세력 이론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약소국들의 해양전략사상은 제해권이나 해양통제보다는 해양봉쇄와 해양거부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즉, 전시 함대결전을 회피하여 상대 해군의 고립을 유도하고, 전력집중으로 순간적인 우세 달성과 적극적 공세를 통해 적을 격파하는 전략이다(박창희, 2012).
오늘날 해양은 해전을 위한 전장이나 단순한 수송의 매개체 뿐 아니라 경제, 과학, 심지어 정치ㆍ외교적인 행위까지 수행되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어, 해양의 인류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의 범위와 크기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해양국가가 늘어나고 이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해양세력 이론은 국제사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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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강대국 및 약소국 해양전략사상과 한국의 해군전략.” 『국가전략』 제18권 4호(2012).
다카하시 요이치 저. 김정환 역. 『전쟁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지정학』. 서울: 시그마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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