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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호(6-7월) | 인간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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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종해 작성일22-07-28 15:00 조회9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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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충무공 이순신


이종해


Ⅰ. 서론


 우리 역사에서 ‘영웅’이라고 호칭할 만한 위인으로 을지문덕,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강감찬, 최 영, 김유신, 안중근 등 많이 있지만 누구나 공감하며 ‘영웅’, ‘구국의 영웅’, ‘성웅’으로 불려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위인은 ‘충무공 이순신(이하 이순신으로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 침략을 받아 조선의 존립이 풍전등화에 직면했을 때 국가를 구하고 숨져간 ‘민족의 영웅’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영웅’이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도 영웅을 "위대하거나 용감한 행위, 또는 우등한 자질로 인해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영웅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재능과 자질, 행위 등에 있어 범인(凡人)의 범주를 넘어서는, 다소간 거리감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정 목적을 가진 ‘영웅화’는 자칫 일방적 개인 숭배나 독재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순신의 ‘영웅적 이미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조성되다 보니 보통 사람들에게 이순신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특정 목적 하에 조성된 ‘영웅’은 이순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가릴 수 있다. 일방적 영웅주의는 맹목적 숭배나 독재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인간 이순신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 고에서는 이순신의 영웅화 과정을 간략하게 짚어보고,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파악해 본다. 이순신도 보통 사람처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고 마음 깊이 고통과 한계를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그가 실천해온 모든 노력과 희생이 바로 진정한 ‘영웅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영웅’ 이순신에서 ‘인간’ 이순신으로 

 

 역사학자나 지식인들은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영웅’을 찾아내고 부각시킨다. 이순신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일제와 열강의 압력이 심화되어 민족적 자존이 위협받던 때이다. 애국계몽운동을 벌이던 지식인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 나라를 구한 위인을 찾아 영웅화하기 시작했다. 당시가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던 만큼 을지문덕, 강감찬과 같은 많은 위인 중에서 일본의 침략을 목숨바쳐 막아낸 인물인 이순신은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신채호는 1908년 『조선제일위인 이순신전(朝鮮第一偉人李舜臣傳)』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이순신을 ‘구국 영웅’, ‘민족 영웅’으로 널리 알리고, “제2 이순신을 대(待)하나니라”라며 새로운 영웅 이순신이 나타나 일제를 물리치기를 희망하였다. 백암 박은식이 1925년 세상을 떠나기 전 저술한 『이순신전』(부제 : 고금 수군의 제일 위인, 세계 철함 발명 시조)은 1941년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에 실려 이순신의 구국영웅 면모를 전파하였다.

 영웅으로서 이순신 이미지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국가적 현창사업이 진행되면서 ‘멸사봉공의 애국군인’, ‘성웅 이순신’으로 격상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지나친 성웅화 반작용으로 ‘원균’에 대한 연구가 부각되고, 김탁환 교수의 『불멸의 이순신』, 김훈의 『칼의 노래』 등 이순신의 인간성에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가 부각되었다. 이와관련하여 이덕일은 그의 『일본 축출의 영웅에서 군사정권의 성웅으로, 다시 인간 이순신으로』에서 “범인이 범접할 수 없었던 성웅 이순신에서 인간 이순신으로 전환된 것이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구국의 영웅이나 성웅이기보다는 보통 시민들과 함께 가는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하였다.

 

Ⅲ.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를 연구한 경우는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적 면모를 연구한 경우는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볼 때, 노승석은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이순신의 성정(性情)』에서 이순신을 인간의 일곱가지 자연적 감정인 칠정(七情), 즉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또, 김경수는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이순신』에서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① 부모ㆍ자식ㆍ가족에 대한 정이 깊었고, ② 야전장수로서의 당당한 면모 ③ 치밀한 성격 ④ 자기를 이해ㆍ인정해 주는 사람하고만 친밀감 유지하는 면모 등으로 평가하였다. 본 고에서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순신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아들이었다. 난중일기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90여회나 어머니 안부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돌아가신 후에는 17차례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통곡하고 눈물짓는 내용이 나온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어머니 안부를 챙기고,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행이다. 다행이다”, “행복하다 행복하다”라고 하고, 이질이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 태우며 흐느껴 울었다. 가슴 태우며 흐느껴 울었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1595.6.10.)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인 1597년 4월 16일 본가에 빈소를 차리고서는 “나는 마음과 힘을 다 썼다.... 울부짖고, 울부짖었다. 빨리 죽기만 기다릴 뿐이다.(氣力備盡... 呼哭呼哭 只待速死而已)”라며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어머니라는 표현을 대부분 “천지(天只)”라고 했다. 이순신에게 어머니는 말 그대로 하늘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고 그리워하는 인간 이순신이었다.

 둘째, 이순신은 공무에만 집중한 듯 하지만 집안 대소사에도 따스한 관심을 보여준 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이순신은 나라의 제삿날 같이 중요한 날에 당연히 출근하여 일을 하는 좌기(坐起)를 하지 않았지만 집안의 형님들, 장인과 장모, 아버지 제삿날 등 집안의 중요한 날에도 좌기하지 않았다. 집안의 종이 병들어 죽으면 “참으로 불쌍하구나”라고 안타까워 했고(1593.6.12.), 종이 먼길 떠난 날 비바람이 불면 “어찌 갔는지 모르겠구나”라며 걱정했다.(1593.9.13.) 장모의 제삿날에는 제삿날을 준비하고 마음을 전달하도록 이들 회와 면, 그리고 계집종을 보냈으며(1594.5.22.), 조카 해가 결혼함에 따라 청혼서와 사주단자, 혼례 비품까지 챙겨(1594.4.18.) 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보였다.

 셋째, 이순신은 아버지로서 자식 사랑 또한 대단했다. 이순신은 탐망선과 탐후인을 통해 집안의 사정을 파악하는 가운데 ‘아들 면의 병이 차도가 없다’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지독히 탔다. 가슴이 지독히 했다”며(1593.7.29) 걱정했다가. 조금 차도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기쁘고 행복한 것을 어찌 다 말하랴”라며(1593.8.2.) 기뻐했다. 아들 회가 결혼하는데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마음 속 걱정을 어찌하랴”라고 안타까워 했으며,(1595.1.21.) 아들 회 생일에 술과 음식을 갖춰 주도록 예방에게 지시하기도 했고(1595.10.3.), 아들 열이 심하게 토하며 아프자 밤세워 걱정했다.(1597.6.11.) 1597년 10월 14일 막내 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던 날 새벽에는 말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전사소식을 전하는 서신을 받아들었을 때는 “봉투를 뜯지도 않았는데,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라며 소리높여 울었다. 아들의 과거시험을 위해 활쏘기 교육을 시키고 송희립을 시켜 과거시험 응시자 명단에 올리게 했다.(1596.6.3.), 이순신은 자식의 장래를 위해 교육하고, 시험응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평범한 부모와 같았다.

 넷째, 이순신은 즐길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이순신은 새벽에 망궐례를 하고 선창에 나가 고기잡는 것을 구경하고, 술을 마시며 새 봄의 정치를 구경했고(1592.2.1.), 휘하 순시간 아름다운 봄 정취를 만나면 “경치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좌우의 산에 핀 꽃과 들판의 싱그러운 풀은 그림같았다”라며 경치를 즐겼으며,(1592.2.19.) 수시로 휘하 혹은 동료 장수들과 술을 즐기기도 했다. 1594년 5월 14일 난중일기에는 “영리(營吏)를 시켜 종정도(從政圖)를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종정도는 종경도(從卿圖) 혹은 승경도(陞卿圖)라고도 하는 놀이기구의 하나로, 넓은 종이에 벼슬 이름을 품계와 종별에 따라 써 놓고 6면으로 된 윤목을 던져 나온 끗수에 따라 관등이 오르고 내리는 놀이인데, 바쁜 공무 중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휴식을 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이순신은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난중일기에 몸이 불편하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은 총 153회이다. 대부분이 “몸이 아주 불편하다”, “몸이 불편해서 좌기하지 않았다”, “밤새 끙끙 앓았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앉고 눕는 것도 어려웠다”, “거의 깨어나지 못했다”, “심하게 토하고 몹시 아팠다”라며 병세가 심함을 표현하였다. 영웅은 무쇠처럼 강인한 신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순신은 지속적으로 아픔을 호소할 정도로 병약했으며 건강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여섯째, 이순신은 굉장히 시적인 인물이었다. 1592년 8월 24일 4차 출전으로 여수 전라좌수영을 떠나 관음포, 사량진, 견내량을 경유하여 8월 25일 진해만에 진입한 이순신은 8월 27일 원포에 정박한 뒤 난중일기에 “서풍이 차갑게 불었다. 나그네 마음이 불편했다. 꿈도 많이 어지러웠다”라고 자신을 나그네라고 표현하여 심란한 마음을 나타냈다. 1593년 8월 17일 상선(지휘선)을 연기로 그을리기 위해 좌별도장(이설)의 배로, 전라 우수사(이억기) 배로 옮겨 다니면서 업무를 하고 저녁 무렵에 상선으로 복귀하였는데, 이날 밤 난중일기에 “달빛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마음을 가늘 수 없구나. (月色如晝 波光如練 懷不自勝也)”라며 서정적 감성을 나타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홀로 앉아”. “물빛은 하얀 비단” 등 감성적 싯구로 마음을 표현하기를 즐겼다. 1595년 9월 14일 충청 수사(선거이)가 작별주를 마시고 짧은 시를 선사하자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답시를 써 주었다. 이순신은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었다.

 

       北去同勤苦      북쪽에 올라갔을 때 같이 애쓰고 고생했고

       南來共死生      남쪽에 내려와서도 더불어 죽고 살았네

       一盃今夜月      한잔 술, 이 밤의 달과 함께 마시고 나면

       明日別離情      내일은 헤어져 아쉬운 정만 남으리

 

 일곱째, 이순신은 번뇌하고 고민과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1593년 5월 16일 ‘명나라 장수가 길 중간에 오래 머무는 것은 교묘한 계략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나라 걱정이 많은데 일마다 이와 같이 걱정이다”라며 걱정하였고, 1594년 난중일기에는 여러 날에서 “뜨거운 날씨가 찌는 듯 했다”, “더위가 쇠도 녹일 듯했다”, “더위와 가뭄이 아주 심하다. 바다 섬도 찌기는 마찬가지였다”라며 농사 일을 걱정하기도 했다. 1595년 1월 1일 일기에는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랏일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明燭獨坐 念至國事 不覺涕下)”라고 기록하고 있다. 난중일기에서 볼 때 이순신은 홀로 있을 때면 나라 걱정에, 가족 걱정에, 농사 걱정에, 부하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을 정도로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

 여덟째, 이순신은 불신과 원망, 비판, 원통함도 가감없이 표현하는 성격이었다. 이순신은 1593년 2월 22일 제포의 일본 전선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우군 함선 2척이 얕고 좁은 곳에 얹히어 적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경상 우부장 등이 보고도 못 본 체하자 이날 난중일기에 “한탄스러웠다. 오늘의 분노를 어찌 다 말하랴”라며 분노를 표출하였고, 1595년 7월 7일 경상 우병사(김응서)가 조정의 허락도 없이 일본군과 접촉해 강화를 의논했다는 이유로 임금의 경고성 유지를 받은 것과 관련하여 “놀랍고 두려운 생각을 이길 수 없다. 김응서는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스스로 회개하고 가다듬는다는 말을 아직도 들을 수 없구나. 심지(心地)와 담력(膽力)이 있다면 반드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이순신은 1593년부터 원균에 대해 심한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난중일기에 원균을 “원흉(元兇)”, “흉악하고 음험한 것”. “거짓으로 꾸며 속이는 것”, “미친 짓”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순신이 물론 원균의 기만적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여 지속적으로 불신감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싫어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직설적 화법으로 비난할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였다.

 아홉째, 중요한 순간 꿈을 자주 꾸고 점을 쳐 의미를 부여하였다. 난중일기에는 꿈을 꾸었다는 내용이 모두 37번 나온다. 이순신은 1593년 8월 1일 새벽에 큰 대궐에서 영의정과 인사를 나누고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꿈을 꾼 뒤 한 달이 지난 8월 30일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1594년 7월 13일에는 아들 면의 병세가 궁금해져 척자점(擲字占)을 치기도 했고, 1594년 8월 27일에는 아내(상주 방씨)의 병세가 궁금해서 다시 점을 쳤다. 심지어 1594년 9월 27일 좌의정 윤두수 주도의 거제도 공략전에 참가한 이순신은 9월 28일 새벽 적을 무찌를 일을 점쳤다.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궁금해진 승패를 점이라는 수단으로 해소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점을 이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Ⅳ. 결 론

 

 이순신은 민족의 구국 영웅으로서 모두에게 추앙받고 있다. 영웅이 주는 원래적 이미지처럼 이순신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국가를 구하고, 뛰어난 지략과 의지로 난국을 헤쳐가는 리더십을 보여준 초월적 인물이었다. ‘민족의 영웅’, ‘구국의 영웅’ 이순신은 일제 침탈기 외세를 극복하려는 민족적 의지를 결집시키고, 애국애족의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미래에도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전해질 것이다. 

 한편, 이순신은 우리 민족에서 ‘범인(凡人)’이 범접하기 어려운 위대한 인물이지만 인간적 면모도 무시할 수 없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걱정하고 분노하며, 불신하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표출했다. 불안한 일이 생기면 꿈과 점괘를 통해 내면의 불안함을 정리하고 희망하는 인간이었고, 자녀를 걱정하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한 사람의 부모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인간적 감정들이 결코 영웅적 면모를 훼손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는 보통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보통 인간이었기에 그가 이룩한 많은 희생과 국난 극복 성과가 더욱 영웅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영웅 이순신의 일방적 영웅화는 자칫 본연의 숭고함을 잊고 개인 숭배라는 맹목성에 도달할 우려가 있다. 다양성과 다원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는 초월적 영웅보다 오히려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여주는 인간 이순신이 훨씬 친밀감이 있고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보통 사람과 같은 이순신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 그리고 구국의 업적은 인간적 약점을 극복한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 참고문헌 >

 

김강녕, 『신채호의 이순신 연구와 현대적 함의』, 2020.

김경수,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이순신』, 2013.

김경남, 『근대 이후 이순신 인물 서사 변화 과정의 의미 연구』, 2012.

장시광,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일상인으로서의 면모』, 2008.

노승석,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이순신의 성정(性情)』, 2007.

노영구, 『역사 속의 이순신 인식』, 2004.

이덕일, 『일본 축출의 영웅에서 군사정권의 성웅으로, 다시 인간 이순신으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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